[책마을] 생물의 진화는 표절·도용이 만들었다

입력 2022-07-29 17:57   수정 2022-07-29 23:39

찰스 다윈은 생물의 진화가 ‘자연선택과 적응’의 과정이라고 했다. 환경에 적합한 특징을 가진 개체군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고, 같은 종이라도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리한 쪽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이를 좀 다르게 표현했다. 그는 지난 40억 년의 생물 진화사를 ‘시행착오와 표절, 도용’으로 요약한다. 유전자 단위에서 보면 인간의 커다란 뇌, 물고기의 지느러미, 새의 깃털과 날개는 생물이 ‘뻔뻔하게’ 서로를 베끼고, 훔치고, 변형한 결과다. 자연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위대한 발명가’라기보다 ‘모방자’인 셈이다.

슈빈이 쓴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자연의 뻔뻔한 표절과 도용의 역사를 보여준다. 저자는 원래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다. 2004년 북극에서 목, 팔꿈치, 손목이 있는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을 발굴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생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화석만큼 강력한 도구가 유전자라고 말한다. 이 책은 화석과 유전자라는 두 축을 통해 ‘자연은 어떻게 생명을 발명해왔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아간다.

현재 생물이 지닌 특성은 수많은 유전자가 복제된 결과다. 예컨대 우리의 큰 뇌는 인간과 DNA가 98% 이상 비슷한 원숭이에게도 없는 ‘NOTCH2NL’ 유전자 때문이다. 이 유전자는 파리에서부터 영장류까지 모든 동물에 있는 ‘NOTCH’ 유전자가 세포 분열을 통해 중복된 것이다. 유전자가 수많은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더 큰 뇌를 갖게 된 것이다.

동물의 몸과 유전자에는 이런 사본이 가득하다. 갈비뼈, 척추뼈, 팔다리뼈 등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의 골격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태고의 골격을 베끼고 변형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다른 종의 특성을 훔쳐 쓴 경우도 있다. 동물의 깃털은 원래부터 비행을 돕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땅에서 먹이를 잡던 이족 보행 공룡이 장식용이나 체온 보호용으로 쓰던 깃털을 새가 가져다가 하늘을 나는 데 사용했다. 저자가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라고도 말하는 이유다.

유전자가 복사되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시행착오가 ‘진화의 연료’가 되기도 한다.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진화는 더 빠르게 일어난다.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며 유용한 돌연변이를 게놈(유전체)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점핑 유전자’ 덕분이다. 저자는 “인간의 게놈에서 10%는 태고의 바이러스가, 60% 이상은 폭주하는 점핑 유전자가 만들어낸 반복 서열이 차지한다”며 “우리 자신의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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