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은행권에서 발견된 ‘이상 외환거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날 금감원은 최근 1년 반 동안 신한·우리은행에서 홍콩, 일본 등지로 비정상적인 33억7000만달러가 송금됐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인출한 원화를 달러로 바꿔 무역 법인 등을 거쳐 해외로 보낸 것이다. 송금 주체의 상당수는 거액 송금이 필요 없어 보이는 신설 법인과 중소 업체였다.
신한·우리은행을 비롯한 국내 은행들은 지난 29일 송금액 5000만달러 이상인 외환거래 중 ‘이상 거래’로 의심되는 사례들을 모아 금감원에 제출했다. 금감원은 이 자료들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점검 대상 거래 규모는 53억7000만달러(약 7조원)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환치기나 자금세탁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이달 본점에 외화 송금의 적정성을 집중 점검하는 팀을 꾸릴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해외 송금을 처리할 때 고객에게 추가 정보를 요청해 거래 진정성이나 자금 원천을 미리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점이다. 올 들어 암호화폐 시장이 급락하면서 비슷한 외환거래가 추가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해 4월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 거래가 늘고 있다”며 은행 외환 담당 부서장을 소집해 주의를 촉구한 바 있다.
심지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들조차 외화 송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국계 은행 관계자는 “이미 작년부터 한국에서 암호화폐로 번 돈을 해외로 빼내 환치기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출처가 불명확하거나 의심스러운 자금은 아예 해외 송금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은행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필요한 서류가 제대로 구비됐다면 현실적으로 고객의 거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고객이 서류를 조작한 명백한 정황 근거가 없다면 현장 실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도 없다.
이 대목에서 금감원의 책임론도 불거진다. 금융권 안팎에선 “비정상적 외화 송금이 대형 은행들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1년 반 동안 금감원도 사실상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조차 못 고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이라도 관계당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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