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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 일대를 덮친 강원도 산불 진화 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에 색다른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핵심 사안 중심이어야 하는데 수십 장의 별첨 자료까지 붙어 있어 다 읽느라 힘들었습니다.” 자신을 ‘활자중독’이라고 여기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공직사회의 ‘보고서 폭탄’에는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첨부 자료까지 읽겠느냐’는 생각에 관성적으로 넣었는데 문 대통령은 다 읽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부턴 보고서를 핵심 중심으로 줄여서 올렸다”고 전했다.
책이나 보고서 등 활자를 통한 정보 습득을 편하게 여긴 문 대통령의 성향은 청와대 바깥의 생생한 소식을 경청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퇴근 후에도 보고서를 즐겨 읽어 집권 기간 내내 ‘바깥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이런 윤 대통령의 스타일은 검사 시절에도 비슷했다고 한다. 검찰 시절에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후배들이 수십페이지의 조사보고서를 들고 가면 첫 페이지의 요약본만 읽어보고 ‘잘할 수 있지’ 하고선 사인해주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보고서 안에 들어 있는 텍스트보다 일하는 사람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최근 들어 윤 대통령의 업무보고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 후 갑작스레 튀어나온 ‘입학 연령 만 5세 하향’ 추진이 대표적이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은 대통령 공약에도 없었다. 1949년 교육법 제정 이후 76년 만에 대한민국의 학제를 바꾸는 정책이 난데없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이도 없다. 일각에선 ‘최소 100만 표는 날아갈 사안’인데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책은 절차적 정당성과 숙의를 통한 국민의 수용성을 확보하는 게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 만나는 일보다 활자를 가까이 한 리더십도 아쉬웠지만, 정책 과정을 담은 보고서나 숙의 과정을 경시하는 리더십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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