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중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대만의 현상 유지'를 강조하는 미국과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국이 벌이고 있는 인도·태평양 패권 경쟁에 국내 정치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중국 측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미국 백악관은 1일(현지시간) 펠로시 의장에 대해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당초 펠로시 의장의 행동이 미·중 갈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하지만 미 하원의장으로서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하는 일정을 확정하자 그의 신변 보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회는 (행정부에서) 독립돼 있기 때문에 하원의장이 독자적으로 방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하원의장의 방문은 선례가 있으며 이번 방문으로 현상이 변화되는 것은 없다”면서 “우리의 ‘하나의 중국’ 정책도 변화가 없으며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이징의 행동은 긴장을 증대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중국군을) 매우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하원의장이 안전한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는 펠로시 의장이 방문을 결정할 경우 중국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향후 어떠한 긴장 고조에도 관여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군용기 여러 대가 이날 오전 대만해협 중간선을 근접 비행했다. 중국 군용기는 전날부터 가까이에 머물면서 중간선을 잠시 건드리고 돌아가는 전술적 움직임을 반복했다. 대만 군용기들은 근처에서 대기했다.
대만 자유시보는 전날에도 중국의 젠(J)-16 전투기 4대가 대만 남서부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국방부가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가동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 주변 상공에 미군 대잠초계기와 정찰기 등 3대의 군용기가 비행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무산되면 중국의 협박에 굴복했다는 비판 속에 11월 중간선거에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안 그래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처럼 두 나라가 모두 양보하지 않는 '치킨 게임'은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에게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실제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마음속으로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라는 지적이다.
워싱턴=정인설/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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