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14세대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지연으로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의 3nm(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양산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면서 파운드리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8일 대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최근 TSMC가 3나노 양산을 위한 생산시설 확장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인텔은 차세대 CPU '메테오 레이크'에 들어갈 그래픽 엔진 'tGPU'(GPU 타일)의 생산을 TSMC에 맡겼는데, 주문 물량 대부분을 취소하고 제품 검증을 위한 소량 생산으로 돌렸다.
이에 따라 메테오 레이크의 양산 일정은 올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로 연기됐다가 다시 내년 말까지 연기됐다. 트렌드포스는 "이 사건이 TSMC 생산 확장 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TSMC의 2023년 케펙스(자본적 지출) 계획에도 영향을 끼쳐 올해 규모보다 작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대만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에 이어 인텔까지 TSMC 3나노 공정 사용을 위해 대기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계획대로라면 삼성전자와의 수주전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인텔 CPU 생산 차질 문제가 불거지며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사) 제품 위탁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점쳐진다.
일단 팻 겔싱어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3년에 우리는 인텔 4, 메테오 레이크를 기반으로 하는 최초의 분리형 CPU를 제공할 것이다. (이 CPU는) 회사와 고객의 연구실 모두 양호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며 생산 차질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다.
TSMC도 "개별 고객의 사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서 "회사의 용량 확장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TSMC가 3나노 공정 기술의 높은 진입 장벽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관측아 제기되는 가운데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3나노 양산 성공을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 신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으로 복수 고객사를 확보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3나노 공정 관련) 모바일에서 대형 고객사들을 확보했다. 몇 군데와 수주를 논의 중이며 규모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53.6%, 2위 삼성전자는 16.3%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3나노 양산이 TSMC와의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나노 등 선단공정 제품이 필요했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들이 삼성전자를 우선 순위에 둘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3나노 공정은 회로 간격이 미세할수록 성능이 높아지는 반도체 제조 공정 중 가장 앞선 기술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3나노 공정 생산 제품(1세대 기준)을 기존 5나노 공정 제품과 비교하면 전력은 45% 절감하면서도 성능은 23% 향상됐다. 면적은 16% 줄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 대신 GAA 기술을 적용했다. 핀펫 공정은 상어 지느러미처럼 생긴 차단기로 전류를 막아 신호를 제어하지만 GAA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4면으로 둘러싸 전류의 흐름을 더욱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대표이사)는 지난달 25일 열린 3나노 출하식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한 획을 그었다"며 "핀펫 트랜지스터가 기술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대안이 될 GAA 기술의 조기 개발에 성공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수율 등(양품 비율) 고객사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TSMC의 3나노 양산을 기다릴 수도 있어 마냥 안심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텔이 파운드리에서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자체 제품 생산과 고객사 확보 전쟁에 뛰어든 점도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3나노 공정 지연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인 데다 중국의 대만 압박까지 이어져 적어도 3나노에서만큼은 삼성전자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안정적인 수율을 꾸준히 보이고, 빅테크급 고객사 첫 유치를 알린다면 팹리스들이 삼성전자를 우선순위로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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