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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의 삼성동시장. 손님맞이로 분주해야 할 이곳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물건을 내놓는 대신 흙탕물을 퍼내느라 바빴다. 전날부터 300㎜넘게 쏟아진 비에 이곳 재래시장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0미터 남짓한 시장 입구와 인접한 2차선 도로를 구분 짓는 경계선은 뒷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버스와 차들은 시속 20㎞조차 내지 못하고 이곳 구간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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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씨 가게 바로 옆에서 35평 규모의 밴드연습실을 운영하는 조요셉 씨(47)는 5~6명의 가족과 함께 연습실에 들어찬 흙탕물을 퍼내고 있었다. 조 씨의 가게로 들어가는 지하 계단의 양쪽 벽은 물을 머금은 벽지가 군데군데 뜯어져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물은 지하의 연습실로 흘러들어 이곳에 비치된 드럼, 색소폰 등 악기는 물론 앰프, 스피커까지 망쳐놨다. 총 5000만원이 넘는 악기들을 하룻밤 새 날렸다는 조 씨는 “그나마 사람이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한숨만 쉬고는 다시 양수기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시장 안쪽 고지대에 위치해 침수를 피한 가게도 물난리를 빗겨나가지 못했다. 20평 규모의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이방남 씨(82)는 가게 앞에 늘어놨던 신발 200여 켤레가 비에 젖어 모두 안쪽으로 치웠다.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가게 천장에서 물이 새 진열대에 높이 쌓아뒀던 약품들이 물에 젖어 못 쓰게 됐다. 김 씨는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우선 새벽에 가게 상황을 찍어놨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사정이 이런데도 구청과 주민센터에선 사태 파악은커녕 양수기 대여 등 도움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 상인은 “소방서와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출동 가능한 인력이 없다고 답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수기라도 달라고 사정해 한 대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고장 난 물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관악구청은 구청 직원은 물론 동 주민센터 직원들까지 총동원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주민센터를 통해 양수기를 지원하는 등 최대한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줄인 것도, 피해를 복구하는 것도 이곳 상인들의 몫이었다. 관악소방서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일했다는 박종진 씨(63)는 가게 앞 맨홀에서 물이 역류하자 새벽 2시경 위험을 무릅쓰고 맨홀뚜껑을 열었다. 박 씨와 함께 건물에 들어찬 물을 퍼내던 문변석 씨(56)는 두 눈이 충혈된 채 양수기를 지하로 연결하고 있었다. 문 씨는 “어젯밤 9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물을 퍼내고 있다”며 “이곳 상인들 대부분이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물을 퍼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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