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손을 놓치다 - 오은

입력 2022-08-15 17:31   수정 2022-08-16 00:50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몸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

매듭이 버린 신발 끈
단어가 놓친 시
추신이 잊은 안부

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
아무도 더듬지 않는 자취

한 명의 우리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아침달) 中

모래알이 스르륵 손가락 사이를 흘러 내려갑니다. 손이 모래알을 놓쳤다기보다는, 모래알이 손에서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손안에 있으면서 이내 그 손을 놓치고 마는 무언가를 상상해 봅니다. 갖가지 존재들의 고유한 형태와 움직임, 그리고 자그마한 실패를요. 때로는 그러한 상상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그 어떤 어긋남이든, 온전히 나만의 책임으로 여기지 않아도 좋다고요. 어느덧 작아진 티셔츠를 앞에 두고 생각해 봅니다.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했구나, 라고요.

김건홍 시인(2020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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