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에겐 평생 바늘과 실이 있었다. 양탄자 등 직물 수리를 가업으로 하던 집안의 딸은 그런 엄마를 매일 도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질렀고, 엄마는 이를 침묵했다. 얼마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거미는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도구였다. 엄마는 거미처럼 끊임없이 실을 뽑아내 가족을 지키고 자신을 희생했다. 엄마를 은유한 대형 청동 거미 조각 ‘마망’은 세계 현대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평생 뉴욕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하다 70세가 넘어서야 시대의 아이콘이 된 프랑스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이야기다.

전시장엔 유독 백발의 여성이 많았다.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연민과 회고가 교차하는 듯 보였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가장 어두웠던 유년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꿰매고 자르면서 수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목발을 짚고 의족을 찬 남자, 붕대를 감고 키스하는 연인, 가슴에서 실을 뽑아내는 헝겊 인형, 어린 시절 살던 집에 걸린 잠옷, 속옷이 매달려 있는 동물의 뼈 등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과 화해의 과정이 끝까지 그의 잠재의식에 남아 있었다는 증거다.
“나는 아는 것에 관해서 얘기할 뿐이다. 내가 여자기 때문에 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여성’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 예술은 카타르시스다.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베를린=김보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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