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예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경제 현상이 인간의 심리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계는 현재의 소비 지출 결정 과정에서 현재 소득과 물가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상 소득과 물가 등도 고려하고, 기업도 투자활동 결정에 있어 해당 투자로부터 예상되는 수익을 고려하게 된다. 더 나아가 대중 심리 자체가 경기침체 및 중요한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다. 가령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입된 각종 규제 정책은 “아파트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대중 심리를 유발해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학에서 자주 논의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표현은 종종 무관한 사건으로 유발되는 예언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1878년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는 “태양광선의 주기적 변화는 작물의 수확량과 다른 경제 산출량에 영향을 미쳐 경기 변동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후속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태양광의 변화가 너무 미미해 지구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1983년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스와 칼 셀은 흑점 자체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더라도, 만일 대중이 그렇다고 믿는다면 실제로 경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대중 심리 자체가 실물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사용된 확대 재정·금융정책 등 수요 측 요인과 러·우 전쟁, 중국 봉쇄정책,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등 공급 측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경제 주체가 안정적인 소비와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없게 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낮춘다. 최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 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에 영향을 주고 이는 소비, 투자뿐 아니라 예금, 대출 등 금융행위와 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줘 총수요 및 총공급에 영향을 미친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의 주요 목적은 대중의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만일 기대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자기충족적 예언 과정을 통해 실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낮은 성장률이라는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국제결제은행 보고에 의하면 1985~2018년 기간에 최소 3분기 연속 긴축통화정책을 사용한 35개국의 경우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지 않고 연착륙한 경우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얼마나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인가는 대중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정부 정책 방향이 얼마나 굳건하게 표명되고 일관성 있게 유지되느냐에 의존한다.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를 겪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우리가 통제하기 힘든 대외적 여건 변화에도 달려 있지만, 우리 정부와 민간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부는 정책의 효과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에 의존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은 충분한 사전 연구를 통해 검증을 거친 뒤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및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한 텍스트 분석 등 대중의 심리를 보다 빠르고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단을 정책 평가에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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