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천문학적 재정 적자에 장차관 연봉 10% 반납, 잘하는 일인가

입력 2022-08-22 10:00  


정부가 장차관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의 2023년 임금 중 10%를 반납받는다고 발표했다. 내년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조한 정부 지출 줄이기, 즉 긴축재정의 일환이다. 2022년 한 해에만 679조5000억원에 달한 전체 정부 지출 예산에 비하면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고위직 급여부터 줄여 일반 공무원들의 임금을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아주 없진 않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죄고 군살을 빼겠다는 정부 각오다. 경제 위기 국면의 정부 자세라고 볼 수 있겠지만, 누가 강요라도 한 듯한 이런 일괄 움직임에 썰렁한 반응도 나온다. 정작 줄여야 할 대형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라는 요구다. 임금 수준이 낮다고 주장하는 실무 공무원들의 뜨악한 반응도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경제 위기 맞아 공직 솔선수범 필요…지자체·국회·사법부·공기업도 동참해야
지금 경제는 위기 상황이다. 식량과 에너지 양쪽에서 비롯된 국제적 인플레이션이 주는 충격이 금리 인상과 겹쳐 경제를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코로나 충격 와중에 누적된 한계 산업과 중소 영세기업의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모든 문제점이 누적되면서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경에 접어들고 있다.

이럴 때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긴축이나 재정 운용의 합리화 같은 추상적 구호로는 부족하다. 무언가 국민이 체감하고 실감할 수 있는 고통 분담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5년간 지출을 엄청나게 확대해왔다. 물론 마구잡이식 정부 지출 증가는 문재인 정부 때의 일이니 윤석열 정부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연속성 차원도 있다. 정권 교체가 어쨌건 간에, 정부로서는 잘못된 정책과 오류 행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았던 큰 정부, 공무원 수 늘리기, 나랏빚을 급증시키면서까지 계속된 무리한 예산 편성, 재정 추계 없이 남발된 현금 퍼주기 같은 폐단이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책임은 후임 정부라도 져야 한다. 전문가들이 제기한 우려나 경고도 여러 번 있었다. 현재 공무원들이 대부분 이전 정부 때도 공직에 있었던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급여 반납은 10% 정도로 해서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장차관 등 정무직을 시작으로 일반 공무원도 동참해야 한다. 더 심하게 하면 퇴직한 공무원에 대한 연금도 줄여야 할 판이다. 기업과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만 마음대로 쓰고, 공무원만 찬바람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문제다. 정부 부처와 청에서 시작해 공기업 등 산하기관은 물론 행정부 밖의 국회와 법원, 기타 헌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까지 모든 공공 종사자의 급여와 금전적 혜택을 줄여야 한다. 이 기반에서 다른 지출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반대] 연간 수억 원 절감, 보여주기 행정…큰 틀의 재정지출 구조조정 절실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이다. 공무원 임금을 깎을 게 아니라 충분히 주고 일을 더 하도록 해야 한다. 굳이 정부 예산에서 지출을 줄이려면 공무원 숫자를 줄이는 게 먼저다. 알맞은 수의 공무원을 유지하면서 일에 능률을 올리게 하는 것이 현대 선진국가의 요건이다. 장차관급 고위직이 임금을 줄이면 일반직까지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실무자급 공무원 급여는 많은 편이 아니다. 더 깎을 여지도 없는데, 고물가에서 급여를 감축하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나. 나아가 우수한 공무원 순서대로 이직을 고려할 것이다. 공직에서 우수 인재 이탈은 결국 국민의 행정 서비스 위축으로 이어진다. 인건비 조금 줄이려다가 국민 손해만 커진다.

정부의 긴축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예산 지출을 줄이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실질적 감축을 하는 게 중요하다. 2022년 예산만 해도 원래는 607조7000억원(본예산)으로 짰으나 실제로는 679조5000억원을 지출했다. 원칙 없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정부 지출을 마구 늘린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야 공히 포퓰리즘 경쟁을 일삼은 국회 탓이 크지만, 실무 편성은 정부가 했다. 예산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이런 일부터 근절하는 게 먼저다. 기하급수로 급증한 나랏빚이 위험수위에 달했는데 조 단위는커녕 연간 수억원가량의 인건비 감축계획은 위기 재정의 실상을 가리는 호도책이 될 수 있다.

정부 지출을 줄이자면 감축할 영역과 분야는 무척 많다. 무분별하게 도입한 각종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하다. 중앙정부가 지속 가능성은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인기 영합의 현금 살포성 복지에 나서면서 각급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복지에 나서고 있다. 전국의 시·도와 시·군·구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안전한 데가 과연 몇 곳인가. 그런데도 복지 경쟁이다. 장차관 급여 삭감이 아니라 공무원을 줄이고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부담을 줄여야 한다.
√ 생각하기 - 재정개혁 외치지만 예사 각오로 어려워…국유재산 매각도 보완책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긴축재정, 예산 동결 같은 정부발 구호가 나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쓰임새가 정해진 경상지출이 적지 않은 데다 복지예산은 일단 시행된 뒤에는 줄이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8.7%에 달했던 연평균 예산 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을 2023년에는 5%대로 낮춘다는 정도에 다소나마 안도해야 할 판이다. 공공개혁, 재정개혁은 모두가 외치지만 실행이 어렵다. 놀리고 있는 요지의 정부 소유 부동산 등 국유재산 매각도 그래서 필요하다. 정부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만큼 국회도 동참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부의 지출 줄이기, 허리띠 죄기는 당장의 경제난국 돌파에도 필요하지만 더 어려운 상황이 될 때 필수 지출을 차질 없게 하자는 대비책이기도 하다. ‘님비(NIMBY)’와 반대로 임기 중에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겠다는 정부 고집이 재정을 파국으로 이끌게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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