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차관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의 2023년 임금 중 10%를 반납받는다고 발표했다. 내년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조한 정부 지출 줄이기, 즉 긴축재정의 일환이다. 2022년 한 해에만 679조5000억원에 달한 전체 정부 지출 예산에 비하면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고위직 급여부터 줄여 일반 공무원들의 임금을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아주 없진 않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죄고 군살을 빼겠다는 정부 각오다. 경제 위기 국면의 정부 자세라고 볼 수 있겠지만, 누가 강요라도 한 듯한 이런 일괄 움직임에 썰렁한 반응도 나온다. 정작 줄여야 할 대형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라는 요구다. 임금 수준이 낮다고 주장하는 실무 공무원들의 뜨악한 반응도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럴 때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긴축이나 재정 운용의 합리화 같은 추상적 구호로는 부족하다. 무언가 국민이 체감하고 실감할 수 있는 고통 분담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5년간 지출을 엄청나게 확대해왔다. 물론 마구잡이식 정부 지출 증가는 문재인 정부 때의 일이니 윤석열 정부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연속성 차원도 있다. 정권 교체가 어쨌건 간에, 정부로서는 잘못된 정책과 오류 행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았던 큰 정부, 공무원 수 늘리기, 나랏빚을 급증시키면서까지 계속된 무리한 예산 편성, 재정 추계 없이 남발된 현금 퍼주기 같은 폐단이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책임은 후임 정부라도 져야 한다. 전문가들이 제기한 우려나 경고도 여러 번 있었다. 현재 공무원들이 대부분 이전 정부 때도 공직에 있었던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급여 반납은 10% 정도로 해서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장차관 등 정무직을 시작으로 일반 공무원도 동참해야 한다. 더 심하게 하면 퇴직한 공무원에 대한 연금도 줄여야 할 판이다. 기업과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만 마음대로 쓰고, 공무원만 찬바람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문제다. 정부 부처와 청에서 시작해 공기업 등 산하기관은 물론 행정부 밖의 국회와 법원, 기타 헌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까지 모든 공공 종사자의 급여와 금전적 혜택을 줄여야 한다. 이 기반에서 다른 지출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의 긴축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예산 지출을 줄이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실질적 감축을 하는 게 중요하다. 2022년 예산만 해도 원래는 607조7000억원(본예산)으로 짰으나 실제로는 679조5000억원을 지출했다. 원칙 없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정부 지출을 마구 늘린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야 공히 포퓰리즘 경쟁을 일삼은 국회 탓이 크지만, 실무 편성은 정부가 했다. 예산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이런 일부터 근절하는 게 먼저다. 기하급수로 급증한 나랏빚이 위험수위에 달했는데 조 단위는커녕 연간 수억원가량의 인건비 감축계획은 위기 재정의 실상을 가리는 호도책이 될 수 있다.
정부 지출을 줄이자면 감축할 영역과 분야는 무척 많다. 무분별하게 도입한 각종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하다. 중앙정부가 지속 가능성은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인기 영합의 현금 살포성 복지에 나서면서 각급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복지에 나서고 있다. 전국의 시·도와 시·군·구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안전한 데가 과연 몇 곳인가. 그런데도 복지 경쟁이다. 장차관 급여 삭감이 아니라 공무원을 줄이고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부담을 줄여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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