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내 투자자와 기업이 대체투자 등을 위해 설립한 해외 특수목적법인(SPC)들이 역혼성단체로 계속 분류되면 해외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이 크게 증가하는 게 불가피해진다.
예컨대 국내 기관이 미국에 SPC를 세워 현지 기업에 투자해 1000억원의 이익을 거뒀다면 지금까지는 150억원만 세금으로 내면 됐다. 한·미조세조약에 따라 현지 배당소득세가 최대 15%까지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SPC가 역혼성단체로 분류되면 앞으론 조세조약이 적용되지 않고 미국 세법 표준세율에 따라 30%인 300억원을 내야 한다.
유럽연합(EU) 국가에서도 기존까진 현지 SPC가 ‘도관(파트너십) 조직’으로 간주돼 소득이 확정됐을 때 국내에서만 세금을 내도 됐지만, 올해 1월부터는 법인으로 간주돼 현지에서 과세된다. 국가별로 평균 25% 정도에 달한다.
가령 미국에 투자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각지에 공장·설비를 두더라도 세금 혜택이 있는 주(州)에 SPC를 세워 이들 자산을 관리하는 사례가 많다. 역혼성단체에 해당되면 이 SPC가 한국에 송금하는 배당수익 관련 세금은 자칫 두 배로 늘 수 있다.
해외 대체투자 등에 속도를 내왔던 국민연금, KIC 등 국내 주요 연기금도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대체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은 22조4174억원에 달한다. 업계에선 이 중 80%에 달하는 18조원을 해외 투자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한다. KIC도 SPC 활용이 일상적인 대체투자 분야에서 10조원을 벌어들였다. 국내 투자자가 역혼성단체 방지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두 기관에서만 지난해 이익의 15%인 최대 3조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해외에서 납부해야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를 통해 해외 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투자도 과세 폭탄에 직면할 수 있다.
세정당국은 역혼성단체 관련 ‘세법 구멍’ 보완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할지, 법 개정을 통해 할지도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회 통과가 요구되는 법 개정이 힘들 경우 올해 소득 집계가 완료되는 연말까지는 빨리 시행령이라도 개정해 국내 투자자가 해외에 세운 SPC들을 도관(파트너십) 조직으로 명확하게 간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령에 SPC가 해외 소득을 분배할 때 소득 원천(배당·이자·양도소득 등)을 명확히 구분하도록 하고, 실제 분배 여부와 관계없이 SPC가 이익을 받은 시점에 즉시 내국법인도 수익을 인식하도록 관련 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역혼성단체 방지 규정을 회피할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BEPS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다국적 기업이 조세제도의 허점을 악용해세금을 회피하는 행위다. 이를 막기 위해 OECD가 마련한 15개 세부 과제가 2015년 G20 정상회의에서 최종 승인됐다.
■ 역혼성단체
reverse hybrid entities. 국내와 해외에서 법률적·세무적 해석이 다른 조직(단체). 한 조직이 해외에선 소득 등이 단순 이전되는 ‘도관 조직’으로 인정되지만 자국에선 독립된 실체인 법인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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