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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크고 작은 불행에 휘둘리며 산다. 국민행복지수가 낮은 나라에서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불행은 왜 끝이 없을까? 내 경우 어린 시절엔 가난과 억압적인 공교육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가난은 불편을 낳고, 굴욕과 불평등을 낳으며, 의지와 열망을 꺾는다. 고등학교까지 병영화를 시도하던 독재 정권 시절, 학교마다 폭력 교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상급생들이 하급생을 때렸다. 학교는 끔찍했다. 내 능력치가 현실을 감당했기에 나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자주 감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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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원이 행복이라면 당신은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인류는 행복이라는 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불행의 바다를 항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일원인 나 역시 모든 시간과 열정을 바쳐 행복이라는 구명보트를 힘차게 저어 불행의 바다를 건너려고 했다.
행복이 몸의 통점(痛點)처럼 일률적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다르다. 나는 영적인 깊이, 내적 고요함, 오랜 우정, 계절의 신선한 느낌 같은 것에서 행복 지수의 밀도가 높아진다. 여행지에서 한가롭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Sonata No. 23 in F minor, Op. 57 ‘Appassionata’)을 들으며 읽은 바슐라르의 책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가난의 굴레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음악에만 기대어 기쁨을 구하던 20대 초반의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골목을 지나는데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Piano Concerto No.1 b-flat minor Op.23) 2악장이 들려왔다. 궁핍한 청년은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 집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의 남은 부분을 들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희열이 차오르며 전율을 느꼈다. 그 찰나 누구도 나를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아, 나는 이 행복 속에서 죽어도 좋겠네’라고 생각했다.
출판사 사장을 할 때 필화사건에 연루돼 두 달 동안 수형 생활을 했다. 살다 보면 뜻밖의 경험도 하는 법이다. 늦가을 오후, 비는 내리는데 나는 우울했다. 그때 맞은편 사동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청년이 창살을 붙잡고 노래를 불렀다.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빛에 물들어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 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낭랑한 노랫소리가 사동과 사동 사이의 공간에 울려 퍼졌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어부의 노래’라고 했다. 어느 대목에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울함에 희망 한 스푼을 넣고 저었더니, 노여움과 분노가 녹은 듯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 찰나에도 나는 분명 행복했다.
세계의 극빈 국가 중 하나인 부탄의 국민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군인보다 승려가 많고, 범죄율은 낮으며, 금연국가이고, 마리화나를 돼지 먹이로 주는 사람들의 나라, 마리화나를 먹은 돼지는 자꾸 배가 고파져서 나날이 뚱뚱해지는 나라가 부탄이다. 마리화나를 먹이며 돼지가 뚱뚱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니! 도로망도 부실하고, 산업도 발달하지 않은 부탄이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는 게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탄다고 우리 행복 지수가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늘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행복 감수성이 낮아진 탓이다. 부디 행복 감수성을 키우시라. 기대치를 낮추고 욕망을 덜어내면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티베트 라마승의 12번째 현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나와 마주친 당신이 내게 미소를 보여준다면 내 불행은 묽어진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처지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자. 나는 유머 감각을 키우고, 작은 것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으며, 남과 더불어 행복해지는 일에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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