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30일 16:1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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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투자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였다. 골드만삭스 출신이 설립한 앵커PE는 유망 테크·IT 분야 기업들에 뭉칫돈을 넣은 후 기업공개(IPO)를 활용해 단기간 수익을 거두는 전략을 폈다.
한때 잘 나가던 앵커PE는 올 들어 잔혹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갑작스러운 경기 침체로 유동성이 얼어붙으면서 투자 자산들의 기업가치가 추락하면서다. 투자 포트폴리오 상당수가 반토막 이하로 추락하면서 당분간 한국 내 신규투자 금지령까지 내려진 상황으로 전해졌다.
한국 시장에선 앵커PE가 코로나19 시절 투자를 서둘러 화를 자초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티몬 컬리 등 고점에 물린 포트폴리오 회수 과정에서 앵커PE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이다.
볼트온 M&A·소수지분 투자 '잭팟'으로 '스타 PEF' 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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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PE는 2020년 이전만해도 유연한 투자전략으로 회사의 기업가치를 키워 수익을 올려온 '스타 운용사'로 꼽혀왔다. 경영권 인수(바이아웃) 전략에 한정되지 않고 소수 지분을 투자한 후 추후 경영권을 확보한 후 회사를 매각하거나 유사 기업을 M&A해 산업내 영향력을 키우는 볼트온(Bolt-on)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대표적인 대박 사례가 의약품 도매업체 지오영이었다. 안 대표는 2009년 골드만삭스PIA 재직 시절 지오영에 첫 투자한 후 2013년 앵커PE를 세워 독립하는 과정에서 골드만삭스PIA로부터 해당 지분을 인수해왔다. 이후 SK네트웍스의 자회사 케어베스트를 비롯해 성창약품, 동부약품, 남산약품, 연합약품 등 연관 중소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합병(M&A)해 점유율을 키웠다. 이후 2019년 블랙스톤에 1조1000억원에 해당 지분을 매각하면서 '잭팟'을 거뒀다. 메타넷엠플랫폼(옛 메타넷엠씨씨)도 10년 전 인수한 뒤 지오영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을 통합해 국내 최대 콜센터 업체로 키웠다.
이외에도 2대주주로 투자했던 투썸플레이스도 성공적으로 기업가치를 키운 사례다. 최대주주였던 CJ그룹으로부터 경영권까지 확보한 이후 투자 3년여만에 1조원에 칼라일그룹에 매각하는 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역시 유사 업체를 볼트온 전략으로 규모를 키운 후 TPG에 매각한 헬스밸런스, 유사한 전략으로 KKR에 8750억원에 매각한 폐기물업체인 ESG그룹 등 연이어 투자 회수에 성공했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수년전만 해도 해외 출자자(LP)들이 대형 바이아웃 분야 한국 운용사를 꼽을 땐 MBK와 한앤컴퍼니 등 여러 곳을 두고 고민했다면 미드캡 분야에선 독보적으로 앵커PE를 선호했을 정도로 각광받은 PEF였다"고 말했다.
코로나19기간 공격적 행보…'고점 투자' 논란
하지만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때부터 투자 전략에 변화가 나타났다. 테크·IT기업의 프리IPO 투자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기업가치를 키우기 위한 별다른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다른 국내외 대형 PEF들이 높아진 기업가치에 투자를 주저하는 사이 가장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며 주목 받았다. 일각에선 기존 블라인드펀드를 빠르게 소진하고 다음 펀드 조성에 나서기 위해 '속도전'을 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앵커PE는 2019년 말 11억5000만달러(약1조1000억원) 규모로 설립한 3호펀드에 이어 2021년 9월엔 16억달러(2조원) 규모 4호펀드 조성에도 성공하며 빠르게 운용사 규모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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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카카오페이지 투자로 인연을 쌓았던 카카오그룹 투자로 단기간 큰 수익을 본 점이 이런 전략 변화에 불을 붙인 것으로 회자된다. 2020년 이후에도 카카오M(2100억원), 카카오뱅크(2500억원), 카카오재팬(6000억원) 등에 잇따라 투자하며 카카오 투자팀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프리IPO로 투자한지 약 8개월만에 성공적으로 증시에 안착하면서 앵커PE도 '대박'을 눈앞에 뒀다.
단일 투자규모도 수천억원대까지 커진 데다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 지난해엔 2000억원을 투입해 간편식(HMR) 1위업체인 프레시지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인 두나무의 기업가치를 약 15조원으로 평가해 지분 1%를 확보했는데, 이 과정에선 별다른 실사조차 거치지 않은 것으로 회자된다.
기존 2대주주로 투자했던 메타넷엠플랫폼 관련해선 2200억원을 더 투입해 최대주주 지분까지 인수해왔다. 무엇보다 외부투자자 유치에 골몰해온 마켓컬리(법인명 컬리)를 기업가치 4조원으로 평가해 2500억원을 투입한 거래에 업계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앵커PE 덕에 컬리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에서 4조원까지 훌쩍 뛰었다.
IT·테크 이해도 부족도 도마위…'컬리' IPO가 시험대 될 듯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을 죄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5월부터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CJ올리브영 등 대형 IPO 기업도 시장 상황을 이유로 연이어 상장을 철회했다. 플랫폼 기업의 돈줄이 막히고 기업가치는 추락하고 있다.앵커PE 포트폴리오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심지어 의무보수확약에 묶여 팔지 못했던 카카오뱅크 지분도 연이은 주가 하락으로 손실구간까지 진입했다.
기존 골칫거리였던 포트폴리오들도 회수가 요원한 상황이다. e커머스 플랫폼인 티몬은 기업가치가 10분의 1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온라인 강의업체 이투스교육, 중소 게임사 라인게임즈 등도 상황이 좋지 않다. 앵커PE가 앞서 성과를 보여왔던 전통 제조업·유통업과 달리 IT분야 경험이 적다보니 관리능력이 미숙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시장에서 나왔다. 특히 소수지분을 투자해 주주로 편입된 회사에서 기존 경영진 혹은 최대주주와 마찰을 보이는 사례도 거론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라인게임즈에 투자한 후 주 단위 개발 스케쥴을 보고해달라고 경영진에 요구하면서 서로 갈등을 보인 것으로 알고있다"며 "앵커PE 입장에선 신작 개발이 하염없이 늦어지며 초조할 수 있었겠지만 경영진 입장에선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제조기업 투자자처럼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인 게 불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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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근 IPO를 앞둔 마켓컬리의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앵커PE는 이번 IPO에서 컬리의 기업가치가 4조에 미치지 못하면 절차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투자금 회수를 둔 다른 대안 없이는 이를 행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고 낮은 기업가치로 상장을 강행해 손실을 확정할수도 없는 상황이다보니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평가다. 한때 6조원 이상 기업가치가 거론됐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최근들어 1조5000억원대까지 쪼그라든 상황이다.
앵커PE는 과거 티몬을 롯데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1조원을 제시한 롯데그룹에 4000억원을 더 요구하다 거래를 무산시킨 사례도 있다. 이후 티몬의 기업가치는 2000억원까지 쪼그라들며 앵커PE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컬리 투자에서도 섣불리 IPO 진행을 막아섰다가 기업가치가 오히려 줄어들 경우 앵커PE 운용사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안상균 대표 중심의 '원맨' 의사결정체제가 유연한 의사결정을 막고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안 대표는 앵커PE 아시아대표를, 안 대표의 서울대 대학 친구인 변성윤 파트너가 엥커PE 한국 대표를 맡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여전히 안 대표의 의사에 따라 투자심의위원회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다. 성과보수(캐리) 배분도 대부분 안 대표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주니어 인력들의 이탈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준호 / 최석철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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