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강도 높은 매파적 발언을 내놓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가 29일 일제히 급락했다. 파월 의장이 경기 침체를 무릅쓰더라도 긴축을 지속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투자자의 투자 심리도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7~8월 이어진 ‘베어마켓랠리’가 끝나고 증시가 변곡점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및 글로벌 증시는 하락 압력을 강하게 받는 가운데 경제 지표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환율 상승에도 매수세를 이어가던 외국인도 결국 ‘팔자’로 전환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달 16일부터 26일까지 9거래일 연속 매수 우위를 이어가며 1조2981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 의지를 재차 강조하면서 결국 10거래일 만에 팔자로 전환했다. 외국인이 매도세로 전환하면서 원·달러 환율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13년4개월 만의 최고치인 1350원40전으로 마감했다. 성장주가 모인 코스닥지수는 낙폭이 더 컸다. 이날 2.81% 하락하며 779.89에 거래를 마쳤다.
주요 아시아국 증시도 대부분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66% 하락한 27,878.96에 마감했다. 대만 자취안지수도 2.31% 하락하며 14,926.19로 장을 마쳤다. 홍콩 항셍지수 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6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회의)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매파적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파월 의장은 미국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근접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며 “시장이 원하는 (금리 인하로의) 빠른 전환은 없다. 물가를 잡으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증권사들은 이날 하반기 코스피지수 예상 변동폭을 잇달아 조절했다. 신한금융투자와 키움증권은 다음달 코스피지수가 각각 2350~2600, 2380~2680 사이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증권도 코스피지수 변동폭 상단을 2650에서 2550으로 낮췄다.
다만 단기적인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가 7월 연저점(2276.63)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기존 통화정책과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추후 금리 인상 강도도 기존 대비 더 강화되진 않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증시가 상대적으로 금리나 환율 전망에 비해 낙관적인 장세가 펼쳐졌고, 당분간 앞서나간 증시가 다시금 정상화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미국 9월 금리 인상 정도가 75bp(1bp=0.01%포인트)보다 50bp 정도 수준으로 추정되는 만큼 증시가 연저점을 뚫을 가능성을 낮게 본다”고 했다. 유승창 KB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국제 유가 등을 고려하며 물가 상승세는 이미 피크아웃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9월 21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와 다음달 13일 발표되는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증시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당분간 물가와 통화정책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증시 변동폭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금리 상승에 취약한 업종은 피하면서 거시경제에 무관한 업종 중심으로 시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방위산업, 조선, 음식료, 원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신증권은 코스피지수가 다음달 초 반등 시도를 하더라도 위험 관리, 포트폴리오 방어력 강화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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