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엽편소설이 30~4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호흡이 긴 콘텐츠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가 늘어서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독자들을 겨냥해 200자 원고지 20장이 채 안 되는 엽편소설 모음집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208/AA.31077381.1.jpg)
그는 ‘작가의 말’에서 “(엽편소설은) 긴 분량의 소설보다 직설적인 면이 두드러져 다정한 이야기는 더 다정하고, 신랄한 이야기는 더 신랄하다”며 “부드러운 진입로가 필요 없는 분량이어서 그럴 텐데, 그 완충 없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원로 소설가 오정희 작가는 과거 사보 등에 발표한 엽편소설 42편을 묶어 <활란>을 냈다. 1968년 등단한 오 작가는 해외에서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작가다. 2003년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새>로 독일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 문학상을 받았다.
독자들은 엽편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 4월 최은영 작가가 낸 엽편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는 벌써 5만 부나 팔렸다. 엽편소설집이 인기를 끌다 보니 김동식 작가는 <초단편 소설 쓰기>라는 엽편소설 작법서를 냈다. 문학과지성사는 <설국>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엽편소설을 묶어 <손바닥 소설> 1·2권을 지난해 출간했다.
그랬던 엽편소설의 부활을 부른 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최대 적(敵)’인 동영상이 죽어가는 엽편소설을 되살렸다는 얘기다. 출판계 관계자는 “짧은 영상과 SNS의 짧은 게시글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은 중단편소설보다 엽편소설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며 “중단편소설보다 작가의 개성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짧은 소설’ 시리즈 책을 내고 있는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엽편소설은 순간을 포착해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매력이 있다”며 “문학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한 편을 완독했다’는 만족감도 준다”고 했다.
엽편소설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엽편소설 판권은 안 팔린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기호 작가의 엽편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영화 제작사에 판권이 팔렸다. 김초엽 작가와 최은영 작가의 엽편소설집은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출간된다.
작품성에 대한 편견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오정희 작가의 <활란> 작품 해설을 쓴 소설가 장정일은 “(엽편소설은) 홍길동인가?”라며 “분량이 적다고 날림으로 쓰거나 일부러 못 쓴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도 아닌데 엽편소설은 서자 취급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는 “엽편소설은 사라지지 않을 흐름”이라며 “작품 수가 쌓여나가면 비평의 장에서 제대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