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초기 단계에 관련 움직임을 파악하고도 적절히 대응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IRA가 공표된 뒤에야 문제 해결을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관 통한 사전 로비 실패
IRA는 지난달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외교부는 대사관 등 북미지역 공관을 통해 민주당이 법안을 준비하던 시점에 IRA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사관 영사관 등에서 미국 의회를 전담하는 의회과를 비롯해 경제과 상무과 등이 IRA 입법 단계마다 관련 내용을 파악했다”며 “단계마다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국 입장을 관철하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IRA에는 미국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자동차만 세액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문이 포함됐다. 전기차를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현대자동차 등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 등 한국산 전기차는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외교부는 IRA 입법 절차가 빠르게 이뤄져 손을 써볼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문구는 지난 7월 27일 공개됐다. 이후 이 법안은 지난달 7일 미 상원을, 12일 하원을 통과했다. 미국 의회에서 통상 법안을 처리하는 데 수개월 걸리는 것에 비해 신속하게 이뤄졌다. 오는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정책 효과를 보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도가 투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할 때 정부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산업부 역시 미국 워싱턴DC에 상주하는 상무관이 현지 정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본부에 보고하는 만큼 법안 처리 움직임을 알고도 제때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관가 분위기다.
○한국만 예외 적용 미지수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에선 정부가 사전에 업체들과 소통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움직임을 파악했다면 국내 업체들과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해 설득에 나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은 IRA가 미 상원을 통과한 뒤인 11일 “해당 조처는 해외 자동차회사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며 “당연히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도 상충한다”고 밝혔다.정부는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지난 달 10일 안덕근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서한을 송부하는 등 항의했다. 지난달 말 워싱턴DC를 방문한 정부 대표단은 미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 상무부 등을 방문했다. 대표단은 현대차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보조금 조항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과 보조금 지급 대상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IRA를 개정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성일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취재진과 만나 “(미국 측이) 한국을 중요한 동맹으로 여기면서 자신들도 준비가 돼 있으니 같이 논의하자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예외 적용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미국을 너무 믿은 측면이 있다”며 “우리 국회와 정부가 대미 아웃리치(물밑접촉)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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