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증거없는 직장내 성희롱 사건…피해자 중심주의 vs 피해자 절대주의

입력 2022-09-06 18:02  



올들어 기업의 인사·법무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 때마다 강의에서 다루기를 희망하는 주제에 관한 사전조사를 했는데, 흥미로운 패턴이 있었다. 예외 없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일견 무리한 주장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하소연성 질문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가령 △지나친 장기간 업무 배제 내지 병가의 주장 △승진이나 평가상 불이익 배제의 서면 확약 요구 △비협조적 동료들에 대한 손해배상 등 과도한 법적 조치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되기 애매한 행위에 대한 무차별 신고 등이다.

이는 기업 실무에서는 실제 그런 주장이 많다는 점, 그런 주장을 받은 담당자가 피해자 중심주의의 요청과 공정한 인사상 요구 사이에서 균형 잡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고에서는 앞서 언급된 예시 중 기업에 직장 내 성희롱이 인정될지 애매한 행위가 신고된 사례를 활용, 기업과 담당자에 필요한 균형잡힌 자세와 대응방안을 알아보기로 한다.

사례는 간단하다. 팀원 10명이 같이 근무하는 개방형 사무실에서 팀장(남)과 팀원(여)이 몇 자리 떨어져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팀원이 입사 직후부터 수개월에 걸쳐 팀장이 자신의 가슴을 늘상 훔쳐보고, 복도를 지나다닐 때마다 위 아래로 훑어본다고 신고를 했다.

위 사례처럼 직장 동료 사이에서 가슴·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훔쳐보는 행위는 언어·육체적 성희롱보다는 드물지만 시각적 성희롱으로 분류돼 금지된 행위다. 따라서 사실이면 팀장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 차례 신고한 팀원 면담을 해보니 훔쳐보기가 일어난 시간과 상황에 관해 일관된 주장을 하고, 신고가 거짓말이라고 의심할만한 사정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신고에 관한 보강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이 그 사실을 강력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옆자리에 근무하는 등 신고사실을 확인할만한 직원을 지목하게 한 후 모두와 1대1 개별 면담을 해보았지만, 신고 사실을 확인해 주는 직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신고 이전에는 팀원이 팀장의 훔쳐보기에 관해 불만 내지 고충을 다른 사람에게 토로한 카카오톡, 이메일, 대화 등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관계까지만 밝혀진 채, 예정됐던 조사가 모두 끝나고 향후 방향을 정할 시간이 왔다. 기업은 훔쳐보기 등을 신고대로 인정하고 팀장 징계를 단행하는 것이 적절할까? 아니면 징계는 하지 않고 피해자 팀원의 2차 피해 방지, 팀장이나 팀원의 배치전환 등 다른 인사상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까?

우선 징계 단행을 찬성하는 입장을 생각해 보자. 이는 △2018년 이래 대법원이 여러 차례 강조한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인지 감수성 원칙 상 신고 사실 확인에는 팀원 진술을 최대한 존중함이 적절한 점 △팀원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고 상세한 점 △팀원이 거짓말 할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할 것이다.

실제 그간 기업 자문 경험에 비춰보면, 아마 적지 않은 기업이 이같은 상황에서(필요하다면 추가 조사로 사실관계를 보강해서라도) 위 근거에 기대어 팀장 징계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피해자 존중 원칙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는 사회 문화 환경 속에서,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 진술만 있어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인사 운영상 '안전'하다는 판단 기본값 내지 어림짐작(heuristic)을 가진 기업과 담당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즉, 훔쳐보기를 사실로 인정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는 경우 짊어질 리스크(팀장 징계취소)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사실로 인정됐을 때 짊어질 리스크(팀원의 항의와 법적 조치, 직장 내 성희롱 대처에 느슨하다는 비난 등)보다 크다고 여기는 경향이 우리 기업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사례 기업도 그런 많은 기업 중 하나라면, 팀장 징계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분명 경청할 점은 있지만 타당하지 않다. 법리나 인사 운영의 면 모두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법리 면에서 보자. 이 사례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볼 때 팀장의 훔쳐보기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정도의 입증이 없다.

직장 내 성희롱 인정과 징계에 필요한 입증 정도를 일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입증이라고 한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조). 이 때 '고도의 개연성'은 △형사판결 유죄 입증에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확신보다는 필요한 심증 정도가 낮지만 △소위 '증거의 우월성'(50%+α)보다는 더 높은 심증(80% 심증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이 요구되는 엄격한 입증이다.

이러한 '고도의 개연성' 의미에 비추어, 사례에서 기업의 팀장 징계는 추후 다툼이 발생하면 무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개방된 사무실 구조와 10명만 근무하는 작은 규모를 고려할 때, 팀원 주장대로 입사 직후부터 수개월간 훔쳐보기가 있었다면, 누군가 알아채거나 팀원이 주변에 고충을 토로한 정황이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한 정황 없이, 또 팀원을 상대로 한 훔쳐보기 아닌 다른 성적 언동이 있었다는 정황도 없이 그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하여 징계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전'한, 임시방편적 조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기업은 직장 내 성희롱 사실 인정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 성인지 감수성이 '고도의 개연성' 있는 입증이 없는 경우에도 팀장을 징계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그런 혼동을 일으키면 자칫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라 피해자 절대주의에 따르게 된다.

단, 설령 기업이 징계를 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그러한 결정이 팀원이 허위 신고를 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므로 팀원에 신고에 따른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징계를 포기하는 것은 훔쳐보기가 있었다는 심증은 어느 정도 있지만 예컨대 50% 정도에 불과하여, 그 정도 심증으로 '고도의 개연성'이 없다는 판단의 결과일 따름이다.

인사 운영 면에서도 사례상 팀장 징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직원들의 권리의식 고취와 여전히 직장 내 성희롱 근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모든 기업은 직장 내 성희롱 분쟁 증가에 대한 제도적 대응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제도적 대응에는 각 사고별로 법 원칙에 입각한 일관적 조치가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간과하고 기업이 그때 그때 '안전'하고 임시방편적 방법에만 의존하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면, 장기적으로 필요한 제도적 자산을 쌓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기업의 태도를 악용하는 가짜 피해자가 등장하거나,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과 이를 지켜보는 직원들에게 냉소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업의 직장 내 성희롱 대처에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존중과 함께 공정한 인사권 행사도 중요하다. 양자의 균형적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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