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 문제를 두고 정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에선 "논의돼야 할 이슈"라고 불을 지폈지만, 정부에선 "사실상 시기상조"라며 맞받아쳐서다. 정부와 당국 간 엇박자가 지속되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규제 완화에 대해 시장과 전문가들은 미온적이다. 일부 지역에선 "환영한다"는 분위기지만 대부분 지역에선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역시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측면에는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족쇄로 채워진 다른 대출 규제가 함께 완화되지 않는 한은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제부처 사령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 규제에 대해 "해제를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조금 조급하게, 발 빠르게 나간 소식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고가주택 대출 규제 완화 논란에 지난 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언젠가는 논의돼야 할 이슈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추 부총리가 이를 반박한 것이다. 관계부처들도 보도자료를 통해 "언젠가는 논의될 수 있지만 현시점에선 검토 및 협의하거나 결정한 바가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2월16일 나온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당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고가주택에 대한 LTV(주택담보 인정비율)를 2개 구간으로 나눠 9억원 이하 분에는 40%, 초과분에는 20%를 적용하도록 하고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해선 대출을 원천 금지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15억원'이라는 가격 기준 근거가 불분명하고 이른바 '똑똑한 한 채'는 현금 부자들만 살 수 있게 돼 '중산층 사다리 걷어차기 대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대책이 시행된 이후 수도권에선 초고가 주택을 제외하곤 중소형 주택이 15억원 언저리까지 오르는 '키 맞추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해당 규제는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소송도 제기된 상태다.
다만 정부 등 관계부처가 규제 완화에 대해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고가주택 대출 제한 완화 여부를 논의하겠지만,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규제 완화 방안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집값이 15억원 내외로 형성돼 있는 강남 3구 인근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고가 주택 거래가 늘어난다기보다는 15억원이 넘어가는 애매한 매물의 거래가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대표도 "15억원 규제로 강남에 진입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들이 있었는데 규제가 해제되면 강남 입성을 원했던 수요자들의 문의가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선 상반된 반응이다.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인근에 15억원이 넘어가는 아파트도 없다"며 "강북에 거주하는 실수요자들의 소득 등을 고려해보면 크게 의미가 없는 정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대출금리도 많이 올라 이자 부담이 큰 게 사실인데 15억원 주담대 규제 해제가 얼마나 시장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라고도 했다.
부산시 해운대구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도 "부산 내에서도 해운대구 등에 거주하는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들이 서울 상급지 등을 고려해볼 여지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15억원 규제 해제는 일반 실수요자들에게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장 거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 자체는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고가 구간 LTV만 완화하는 것은 거래 활성화 측면에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함영진 직방데이터랩실 실장도 "최근 3년 아파트 거래가격대별 거래 비중을 살펴보면 15억원 초과 거래 비중은 전국으로 봤을 1.3%, 수도권으로 넓혀도 2.9%밖에 되질 않는다"며 "서울이 12.4%로 규제 완화 영향을 일부 받겠지만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고 부동산 시장이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 단기적인 거래 증가, 가격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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