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원화가치 하락폭(환율 상승폭)이 크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원화)가 그 전엔 덜 떨어졌다. 기간을 어떻게 놓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이날 회의는 환율이 1일 17원 넘게 오르며 1350원을 돌파한 데 이어 2일에도 7원 이상 상승하며 1360원 선을 뚫고 오른 뒤 열렸다. 환율 급등 우려가 커진 상황이었는데도 이 총재는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원화가 덜 떨어졌다’고 들릴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다. 시장에선 “모래 좀 뿌려달랬더니 기름을 부었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5일 환율은 8원 이상 오르며 1370원을 넘어섰고 7일에는 1380원대로 올라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TV에 나와 “달러화 강세로 다른 주요국 통화가치도 내려가고 있어 위기 징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한 달 전께엔 “환율 1300원대 자체가 경제 위기 징표는 아니다”고도 했다.
외환당국 수장들의 이런 발언은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취지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한국 경제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안정시키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외환당국 수장들의 발언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의적절한 구두발언 등을 통해 환율 상승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채 오히려 환율 급등을 용인하는 듯한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는 “역외 투자자의 경우 이 총재와 추 부총리의 발언에 큰 의미를 부여해 원화가치 추가 하락에 베팅했다”고 전했다. 추 부총리와 이 총재가 메시지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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