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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 2.1m, 길이 12m의 거대한 흰 장벽이 서서히 분리되며 열린다. 노를 젓듯 35쌍으로 나뉜 몸체는 위아래, 양옆으로 출렁이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한다. 펼쳐진 노의 한쪽 면은 흰색, 한쪽 면은 검정색. 그 중심엔 정교하게 설계된 복잡한 기계 장치가 몸체를 이룬다. 힘차게 항해하는 거대한 배. 하지만 아무리 힘차게 노를 저어도 이 배는 꿈쩍않고 서있다. 선박 안에 앉은 두 명의 선장은 등을 마주한 채 앉아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며 선원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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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로 개막한 '최우람-작은 방주'의 전시장 풍경이다.
30년 간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 생명체'를 만들며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최우람 작가(52)는 2013년 MMCA 서울관 개관 기념전에 참여한 후 10년 만에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전시의 제목은 '작은 방주'이지만 작품의 스케일은 거대하고, 메시지는 강렬하다.
각종 비엔날레와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 개인전은 마지막으로 열렸던 국립대만미술관 전시 후 5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전시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움직임이고, 기계문명 속에는 인간 사회의 욕망이 집약돼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철학, 종교적 관점에서 기술 발전의 양면을 파고든 그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 실존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공생에 관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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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품 창작 기간 동안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은 동시대인들에게 "자신만이 항해를 설계하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라는 응원과 위로를 담았다"고 했다.
'작은 방주' 작품은 매 시간대별 상연시간이 있다. 음악과 함께 5전시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하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숙지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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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을 처음 맞이하는 '원탁' 작품은 지름 4.5m의 거대한 원형 상판을 짊어진 사람들(볏짚으로 만든 인간)이 서로 둥근 공(머리와 꿈을 상징)을 차지하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작품. 욕망에 가득 차 힘겹게 노력할수록 꿈은 점점 더 멀어지는 현실을 암시하기도, 인간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 공을 지켜내려는 공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하나'와 '빨강'이다. 금속 재료에 타이벡(Tyvek) 섬유를 입혀 꽃잎으로 형상화했다. 꽃봉오리에서 시작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패턴인데, '하나'는 흰색으로, '빨강'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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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치열한 생사의 현장에서 힘겹게 일했던 이들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란에 빠졌던 시대에 대한 위로의 의미를, 빨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생명력과 강렬한 순환의 의미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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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애호가는 물론 공상과학(Sci-Fi) 영화 마니아들도 스크린 속 상상이 현실이 된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등이 작품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다.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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