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韓 외교력 시험대 된 美 보조금

입력 2022-09-12 17:36   수정 2022-09-13 10:05

지난 7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선 미국 내 한국전쟁(6·25전쟁)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벽’ 완공 기념식이 열렸다. 정전 협정 체결일에 맞춰 열린 한·미 동맹 행사로 한·미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도 이날 발의됐다. 추모의 벽에서 지척인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미 상원 민주당 홈페이지를 통해 법 초안이 공개됐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습 처리된 인플레 감축법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됐다. 지난해 ‘더 나은 재건 법안(BBB 법안)’이란 명칭으로 추진한 3조5000억달러 규모 지출 예산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예산 규모를 줄이고 이름만 인플레 감축법으로 바꾼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북미산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기로 한 조항이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관련국의 의사가 반영될 것으로 여겼다. 한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배터리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거의 수정 없이 하원을 통과하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쳤다. 법안 초안 공개부터 법 시행까지 20일밖에 안 걸린 ‘초고속 법안’이었다. 게다가 당시 미 하원은 휴회 기간이었다. 이 때문에 하원 의원 435명 중 절반에 가까운 200여 명이 대리투표를 택했다. 공화당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의원들도 대부분 법안 내용을 몰랐다. 한국 정부가 728쪽 분량의 법안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이 “대미 직접 투자액이 세계 1위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수 있냐”고 불만을 터트려도 결과를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대통령실과 국회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한·미 동맹 저해나 대미 투자 위축 등의 우려를 미국에 전달했다. 그럴 때마다 백악관은 “의회 소관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발뺌했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자 미국도 “얘기나 들어보자”며 한국과 대화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논의 자체를 거부한 철강 수출 물량 제한(쿼터) 협상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일본 등엔 철강 관세를 완화했으나 한국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한국이 이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미국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전기차 보조금에 대해선 곧바로 한·미 간 대화 채널을 개설했으니 한국 정부 입장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자화자찬할 만하다.
미국 여론 움직일 주장을 해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선 미국의 태도 변화는 한국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의 집단 반발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하는 조항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 조항을 바꾸기 위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외쳐봐야 미국 여론을 크게 움직일 수 없다. 차라리 이 법안이 중국 견제에 구멍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소유한 볼보 전기차가 미국의 보조금 대상에 들어간 게 대표적인 예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워싱턴 로비전’에서 한 발 빠져 있다. 통상교섭본부 쟁탈전을 하고 있는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사안을 놓고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뒤통수 프레임’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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