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사피온의 AI반도체가 글로벌 AI칩 성능 테스트 ‘MLPerf(엠엘퍼프)’에서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성능 지표를 인정받았다. 일부 항목은 '업계 1위' 엔비디아를 앞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피온은 자사 AI 반도체 칩 X220이 엠엘퍼프에서 높은 데이터 처리 속도와 효율성을 인정받았다고 13일 밝혔다. 세계 AI 반도체 칩 기업들이 모여 성능을 경쟁하는 엠엘퍼프는 지난 8일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성능 테스트 건수는 5300건에 달했다.
이번 테스트에서 사피온의 X220은 비슷한 스펙(규격)인 GPU(그래픽처리장치) 대비 뛰어난 성능을 나타냈다. 같은 시간 동안 X220이 사진 등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했다는 의미다.
MLPerf의 데이터센터 추론 벤치마크에선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서비스용 GPU A2칩에 비해 컴팩트 모델이 2.3배, 기업용(엔터프라이즈) 모델은 4.6배 높은 성능을 나타냈다. 데이터센터 추론 벤치마크는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AI 서비스 성능을 측정한다. 국내 기업의 AI칩이 이 부문에 출품한 것은 사피온이 최초다.
전력 효율성도 높게 나타났다. 최대전력 소모 기준으로 X220은 엔비디아의 A2에 비해 전력소모당 성능이 두 배(엔터프라이즈 모델)에서 2.2배(컴팩트 모델)까지 높았다.
사피온 측은 "X220은 2020년 말 출시한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최신 경쟁 제품 대비 효율성이 뒤처지지 않았다"며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단 공정을 사용하지 않고 28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공정을 썼지만 7㎚ 미세 공정을 적용한 칩보다 성능이 우수했다"고 알렸다.
사피온은 이번 MLPerf에서 국내 최초로 AI칩 상용 제품화 단계 등급을 등재하기도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른 제품 성숙도를 검증받았다는 의미다. 그간 국내 AI반도체들은 모두 연구·시제품(프로토타입) 단계를 받았다.
사피온은 내년 하반기께 출시를 예정한 차세대 칩 X330이 더욱 높은 성능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사피온의 첫 상용화칩인 X220을 기반으로 기술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X330은 글로벌 시장으로도 진출하는 게 목표다.
류수정 사피온 대표는 “내부 상용화를 통해 경쟁력을 검증한 X220이 MLPerf에서 객관적인 성능 우수성을 인정받아 좋은 레퍼런스(평판)를 더 쌓게 됐다"며 "X220의 응용 분야를 더 늘리고, 내년엔 차세대 칩 X330으로 기술 격차를 더 벌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피온은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모여 설립한 AI 반도체 기업이다. SK텔레콤이 SK그룹 AI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시초다. SK텔레콤은 그간 자체 AI 칩을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 지능형 영상 보안 솔루션 'T뷰', AI기반 미디어 품질 개선 솔루션 '슈퍼노바' 등에 활용했다.
SK텔레콤은 작년 말 사피온 부문을 분사해 올초 SK하이닉스, SK스퀘어 등과 함께 사피온을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다.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SK텔레콤(62.5%), SK하이닉스(25%), SK스퀘어(12.5%) 순으로 사피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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