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이 적발한 2267건의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관련 부당 집행 사례는 ‘비리 종합선물세트’를 연상케 할 정도다. 서류 조작, 가짜 건물 건설, 쪼개기 수의계약, 지원금 전용, 입찰 담합 등 생각할 수 있는 각종 위법 사례가 등장한다. 특히 이번 조사는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12곳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인데도 태양광 부문에서만 1800억원대의 비리가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태양광 보급을 무리하게 서두르는 과정에서 위법·특혜가 양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위 서류로 공사비 ‘뻥튀기’
위법 사례를 보면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해 부당 대출을 받은 사례가 가장 많았다. 4개 지방자치단체의 395개 사업을 표본조사한 결과 25%에 달하는 99개 사업에서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정황이 드러났다. 한 발전 시공업체는 발전사업자에게 실제보다 금액을 부풀린 세금계산서를 발급했다. 발전사업자는 이렇게 ‘뻥튀기’된 계산서를 근거로 금융회사에서 실제 가능한 금액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았고 대출 집행 후 시공업체는 부풀린 세금계산서를 취소했다. 이 시공업체는 이런 식으로 4개 지자체에서 18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지에 가짜 버섯재배시설이나 곤충사육시설을 지은 뒤 그 위에 태양광 시설을 짓고 대출금을 받은 사례도 20여 건에 달했다. 관련 불법대출 규모는 총 34억원이었다. 시공업체 견적서만 받고 공사비 내역을 확정해 부실대출한 사례도 158건 적발됐다.
30억원 사업, 203건으로 쪼개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사업을 잘게 쪼개 입찰 대신 수의계약을 한 곳도 대거 적발됐다. 4개 지자체는 30억원 규모의 도로·수리시설 정비공사를 203건으로 분할했다. 건당 1500만원 수준의 사업으로 축소해 여러 업체가 참여하는 입찰 대신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이 같은 특혜 제공으로 약 4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고 밝혔다.
한 지자체는 보조금을 승인 없이 변경해 다른 지역 마을회관 건립에 사용했다. 한 군(郡) 단위 지자체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을 하면서 4억원의 사업비 잔액을 반납하지 않고, 집행이 완료된 것으로 허위 결산을 했다. 이 같은 보조금 위법 집행으로 적발된 사례는 845건, 583억원에 달했다.
입찰 과정에서 업체 간 담합도 발견됐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발주한 전기안전점검장비 구매입찰에 참여한 2개 회사는 들러리 업체를 참여시켜 14건, 40억원 규모의 사업을 따냈다.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사업을 한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은 280억원 규모 사업의 민간사업자 부담분 142억원 중 77억원을 과다 계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지자체는 태양광 시설을 조달 구매하면서 한 곳만 생산하는 사양으로 구매 요구서를 작성해 해당 업체에 특혜를 줬다. 이 지자체는 구매요구서와 다른 사양의 태양전지 모듈을 공급받고도 적정 제품을 받은 것으로 처리해 설치하기도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나랏돈 새”
이번에 적발된 사례는 2018년부터 5년간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예산을 통해 집행한 11조8882억원의 사업 중 2조1000억원에 대한 1차 표본조사 결과다. 전기요금의 3.7%를 따로 떼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 대한 첫 운영실태 조사이기도 하다. 정부는 표본조사에서 다수의 위법 사례가 적발된 만큼 전수조사를 통해 나머지 10조원 규모 사업에 대한 위법 여부도 가려낼 계획이다. 이덕진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 부단장은 “(전수조사를 위해) 관련 부처로부터 추가 파견을 받거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번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태양광 사업에 나랏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새고 있었다”며 전수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위법 사례 적발을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진 않을 방침이다. 한 총리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사례를 조사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할 계획”이라면서도 “규제가 강화돼 개악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