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 파업에 면죄부 주는 '노란봉투법'…왜 우리만 이 지경인가

입력 2022-09-14 17:47   수정 2022-09-15 06:45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산업계 우려 등 반대 입장을 전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과 경영계의 걱정을 수렴해 국회로 보냈다.

현재 총 6건이나 발의된 노란봉투법안은 노동조합의 불법적 쟁의 행위가 있어도 노조, 노조 간부,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를 제한하는 게 골자다. 심지어 이 중 4개의 발의안에는 ‘폭력·파괴 행위가 있어도 노조의 의사결정에 따른 경우라면 손해배상·가압류가 금지된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불법 파업과 그 과정에서의 파괴 행위에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한다면 법의 이름으로 폭력과 파괴를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인의 것이든 법인 것이든 재산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며, 이는 헌법이 보장(제23조)하고 있다. 재산권이 침해됐을 경우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민법에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보장하는 현대 민주국가의 기본 원리이며 법질서다. 어떻게 노조만, 그것도 폭력·파괴적 행위를 예외로 둘 수가 있나. 이 법안은 가뜩이나 파업이 넘치는 한국 산업계에 ‘불법 파업의 면죄부’를 노조에 주면서 노사관계도 한층 악화시킬 공산이 다분하다. 초강성 노조가 그나마 불법 점거 등을 나름 자제하는 것도 기물파손과 영업 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조단체와 친노조 세력은 그동안 거대 야당에 면책 입법을 요구해온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빚어질 파장과 부작용을 제대로 봐야 한다. 해외 사례가 있다지만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사실상 영국뿐이다. 영국조차도 배상 상한을 정해놨을 뿐이며 노조의 면책 요건도 제한적이다. 영국에는 대체근로 허용, 파업 12주 이후 가능한 해고제도 등 사측을 위한 다른 장치도 있다. 노조 입장이 다각도로 법에 반영되는 독일, 프랑스는 물론 일본에도 없다. 산업계에서 ‘불법파업 조장법’ ‘노조 방관법’이라는 게 무리가 아니다.

노조와 친노조 사회단체들이 야당에 무리하게 조기 법제화를 재촉하는 배경은 짐작할 만하다. 51일 만에 어정쩡하게 봉합된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 파업 사태로 생긴 7000억원의 손실에 대한 회사 측 손해배상 소송부터 막자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때 노조에 대한 47억원 손해배상 판결로 이어진다. 그때 노조는 친노조 단체로부터 노란봉투에 담긴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제는 아예 법으로 ‘예외적 면책’ 특권을 갖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후 사정을 직시하고 냉철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대우조선뿐 아니라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파업에서 어정쩡하게 대응해온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보폭이 유난히 좁은 고용노동부 행보를 보면 과연 노동개혁을 내세워온 정부인가 싶은 의구심만 커진다. 벌써부터 주무 장관이 몸을 사리고 해당 부처가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정의당까지 가세한 야당 분위기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보다 더 나갔다”는 산업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에 몰아붙일 기세다. 가뜩이나 미증유의 복합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는 판에 이렇게 ‘글로벌 스탠더드’와 멀어져선 안 된다. 고용 창출도 방기하고 국내외의 투자까지 다 내쫓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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