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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골프를 쳤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큰 워터해저드를 품은 파3 홀을 마주했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그린에 올리려면 물 1만7500t이 담긴 8264㎡ 크기의 호수를 넘겨야 하는 홀.
롯데스카이힐 제주CC의 시그니처 홀(오션코스 5번홀)을 만난 첫 느낌은 ‘감탄’이 아니라 ‘한숨’이었다. ‘저 물을 넘길 수 있을까’란 불안감에 호수와 나무,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평소 물만 만나면 몸에 힘이 들어가 ‘뒤땅’을 자주 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눈앞에 물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홀은 아니다. 화이트 티에서 홀까지 거리는 134m(블랙 티 186m, 블루 티 159m, 레이디 티 110m). 8번 아이언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120m 이상 날리면 해저드를 넘길 수 있는 만큼 살짝 뒤땅이 나도 괜찮다.
마음을 다잡고 8번 아이언으로 내리쳤다. 조금 덜 맞았지만, ‘온 그린’은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공은 생각보다 빨리 추진력을 잃더니 호수로 직행했다. 바람 때문이었다. 박 팀장은 “이 홀에선 티잉 에어리어와 그린 주변에서 정반대 바람이 불 때가 많다”며 “지금도 그린 부근에서 맞바람이 강해 비거리가 짧아진 것 같다”고 했다. 캐디는 “바람이 셀 땐 3클럽 정도 길거나 짧게 잡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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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드 티에서 깃대 왼쪽 약 3m 지점에 공을 올렸다.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물이 아니라 산이다. 제주도 골프장에서 그린 경사를 읽을 때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이른바 ‘한라산 브레이크’. 확실한 오르막 퍼트라고 생각했는데, 캐디는 “내리막이니 세게 치면 안 된다”고 했다. 박 팀장이 “이 골프장에선 무조건 캐디 말을 들으라”고 맞장구쳤다. 툭 갖다 댄 공은 슬금슬금 흘러 홀 안으로 사라졌다. 보기였다.
고(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그런 그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아주 어려운 코스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80대 중후반 스코어를 적어냈다는 신 명예회장은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고. 이 덕분에 롯데스카이힐 제주CC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코스’로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2008년부터 이곳에서 열린 KLPGA투어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 출전한 프로선수 대부분이 “좋은 샷에는 확실한 보상, 나쁜 샷에는 확실한 페널티를 주는 골프장”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고급 골프장답게 티잉 에어리어와 페어웨이, 그린에 벤트그라스를 심었다. 러프는 켄터키블루그라스다. 정회원이 150명에 불과해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회원제 18홀과 대중제 18홀을 포함해 하루에 많아야 70여 팀만 받는다. 티 간격이 10분이라 앞뒤 팀과 마주칠 일도 없다.
제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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