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사망에만 보험금 지급"…지인 권유에 가입했다가 '충격' [김수현의 보험떠먹기]

입력 2022-09-17 07:10   수정 2022-09-17 16:30


#. 지난해 친한 지인의 끈질긴 권유에 한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는 30대 직장인 김모씨. 언니 정도 부르면서 알고 지냈던 지인은 원금보장도 되는 데다 이자는 은행보다 높다며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김씨는 목돈 마련 개념으로 둔다면 적어도 손해를 보진 않을 것 같아 보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3일 전 보험 약관을 살펴보던 남편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해당 보험은 원금을 보장하는 저축성 보험 상품이 아닌 본인이 사망해야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게 된 후 해지를 알아보기 위해 바로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는 '종신보험의 경우 중도 해지 시 원금보장이 불가하며, 해당 상품의 경우 계약 해지 시 납입금의 절반도 돌려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사회초년생 또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으로 속여 파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을 통해 돈을 불리기 어려워진 최근에는 이러한 유혹들이 더 늘었습니다. 주로 금융 지식이 미약하고 종잣돈을 어떻게 해서든 불려보고 싶은 젊은 층이 타깃이 되곤 합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종신보험에 대해 사회초년생의 목돈 마련 상품으로 적합하지 않다며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으나, 관련 민원은 끝없이 발생하고 있죠.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으로 속여 판매하는 행위는 수수료율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종신보험은 타 보험 대비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받는 대표 상품으로, 통상 저축성 보험의 2배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설계사에겐 고마운 상품일지 몰라도 보험계약자에게 종신보험은 재테크와 저축 목적에 부합할 수 없는 상품입니다. 종신보험은 본인이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한 보장성 보험입니다. 저축성 보험에 비해 많은 위험 보험료(사망 보장용 보험금)와 사업비(모집인 수수료)를 공제하기 때문에 중도 해지 시 환급금이 납입 보험료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연금 전환을 신청하더라도 해지 환급금을 재원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만큼, 비슷한 수준의 보험료를 납입한 연금보험보다 적은 연금액을 수령할 가능성이 크죠.

그렇다면 보험설계사로부터 불완전판매를 당했을 경우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은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계약 시점에 따른 구제책을 실행하는 것이 보험계약자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보험 상품 계약 성립일이 3개월 이내라면 현행법에 따라 계약 취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상법 제638조의3(보험약관의 교부·설명 의무) 1항 및 2항에는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약관을 교부하고 그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여야 한다. 보험자가 이를 위반한 경우 보험계약자는 보험 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계약이 취소되면 보험계약자는 납입 보험료 전액과 경과 기간 발생한 이자까지 모두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김씨의 사례처럼 계약 체결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시점이라면 보험계약자는 설명받은 내용에 따라 보상해줄 것을 보험사에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약관규제법 제3조 및 제4조에서 '사업자는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약관에서 정하고 있는 사항에 관하여 사업자와 고객이 약관의 내용과 다르게 합의한 사항이 있을 때는 그 합의 사항은 약관보다 우선한다'고 규정한 데 따른 것입니다.

물론 보험 계약을 취소하거나 설명에 따른 보상 변경을 요청하기 위해선 보험설계사로부터 설명받은 내용이 약관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입 당시 건네받은 보험 안내자료, 통화녹음 등이 입증 근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보험설계사가 상품에 대해 잘못 설명한 부분이 약관의 중요한 내용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대법원 2010년 3월 25일 선고 2009다91316, 91323 판결에 "약관에 정하여진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그러한 사항에 대하여까지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험 계약 성립일로부터 3개월이 지났으나 설명에 따른 보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면 보험계약자는 민법에 근거한 계약 취소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민법 제109조(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서는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보험설계사가 중요한 내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보험계약자 착오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계약 체결에 문제가 있었단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해당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까지 효력이 발생합니다.

착오 발생에 따른 보험 계약 체결 여부는 법규범 위반 여부, 계약 내용 공정성 여부, 체결 당시 구체적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게 됩니다. 만약 계약자가 착오 발생에 따라 정당치 못한 계약을 체결했음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보험사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보험계약자의 손해가 보험사가 보험설계사에 모집을 위탁하면서 충분한 관리 및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보험업법 제102조(모집을 위탁한 보험회사의 배상책임) '보험회사는 그 임직원·보험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소속 보험설계사 포함)이 모집하면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할 책임을 진다. 단 보험회사가 보험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에 모집을 위탁하면서 상당한 주의를 했고 이들이 모집을 하면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하여 노력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조항에 따른 조치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으로 속여 파는 사례는 보험시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해묵은 문제다. 종신보험의 경우 보험사가 상당한 비중의 사업비를 별도로 떼가는 상품으로 저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며 "보험 가입 시 설계사의 설명을 녹음해두거나 안내자료와 설계사 명함을 함께 촬영하는 등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둔다면 향후 불완전판매 주장시 입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내용은 특정 사례에 따른 것으로, 실제 민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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