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축산' 가장 먼저 없앤 英…돼지고기 자급률 50% 아래로 추락

입력 2022-09-16 17:57   수정 2022-09-17 02:31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동물복지 개념을 선제적으로 적용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양돈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동물복지 실현 과정에서 비용은 크게 늘었지만, 생산성은 낮아져 인접 국가에 비해 돼지고기 가격 경쟁력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은 1996년 동물복지법을 제정하고, 1999년부터 스톨(고정 틀)을 사용한 모돈(어미돼지) 사육을 금지하는 등 유럽연합(EU)의 동물복지 기준을 확립하는 데 앞장섰다.

문제는 동물복지 적용으로 농가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돈육 가격이 치솟으면서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여론조사에선 “동물복지를 지지한다”고 답하면서도 일반 돈육보다 가격이 비싼 ‘동물복지 돈육’에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저렴한 가격에 돼지고기가 수입된 것도 영국 양돈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결국 1998년 98만 마리에 달하던 영국의 모돈 사육두수는 2020년 말 기준 37만 마리 수준으로 급감했다. 현재 영국의 돼지고기 자급률은 50% 미만이다.

양돈산업에 동물복지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덴마크 역시 현장에선 법으로 정한 기준을 사실상 지키지 못하고 있다. 덴마크는 2013년부터 임신 4주가 넘은 돼지는 군사(群飼) 사육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농장이 임신틀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김유용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덴마크는 다른 나라 축산물과의 차별성을 추구하기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동물복지 개념을 먼저 적용한 나라이자 대표적인 양돈 강국”이라며 “그런 나라에서도 군사 사육 전환 시 임신돈의 서열 다툼, 감염병 우려 등으로 사실상 임신틀 사용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양돈농가들이 동물복지 적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유럽과는 그 방식이 다르다. 미국에선 모든 농가에 동물복지를 강제하고 지키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은 거의 없다.

대신 동물보호단체와 소비자단체 등의 요구로 기업형슈퍼마켓(SSM)과 레스토랑이 자체적으로 동물복지 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상품을 먼저 납품받고 있다. SSM 등에 납품하길 원하는 양돈농가만 추가적인 시설 투자 등을 통해 동물복지 기준을 만족시키면 된다. 김 교수는 “30~40년 전부터 동물복지 개념을 연구해온 유럽 등 양돈 선진국들도 동물복지 기준의 모호함과 생산성 악화 등의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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