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환투기 세력은 왜 원화 방어능력을 주목하나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2-09-18 17:33   수정 2022-09-19 00:23

최근 달러 강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시작된 달러 강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빅뱅을 몰고 왔던 ‘낙인(stigma)선’을 순차적으로 넘어서고 있다.

첫째, 일본은행(BOJ)의 울트라 금융완화정책 고집으로 엔화 가치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지난 4월 엔·달러 환율이 125엔을 넘느냐를 놓고 “안 넘는다”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와 “130엔까지 갈 것”이라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재무관 간 논쟁에서 생긴 ‘구로다 라인’과 ‘미스터 엔 라인’이 모두 뚫렸다. 이달 들어서는 ‘플라자 라인’마저 무너졌다. 이는 2차 오일쇼크로 불거진 물가를 잡는 과정에서 심화된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 5개국 간 맺은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당시 엔·달러 환율 수준인 142엔을 말한다.

둘째, 유로화 약세도 엔화 못지않다. 1999년 ‘패리티 라인(1유로=1달러)’에서 출발한 유로화 가치는 2016년 6월 브렉시트 당시 한 차례 붕괴될 위험에 몰린 적이 있지만 작년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집중되면서 지난 7월에는 패리티 라인이 힘없이 무너졌다.

‘블랙 데이’ 30주년을 맞아 영국의 파운드화도 ‘소로스 라인’이 뚫렸다. 블랙 데이란 1992년 9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을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서 탈퇴시킨 사건을 말한다. 앞으로 파운드화는 ‘1파운드=1달러’ 선마저 무너지면서 유로화와 같은 운명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위안화 환율은 이른바 ‘포치(破七) 라인’이라 부르는 달러당 7.0위안 선이 무너졌다. 2012년 취임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위안화 국제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포치 라인은 생명선처럼 여겨졌다. 위안화 가치가 이보다 절상되면(환율 하락) 위안화 국제화가 성공하는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포치 라인이 뚫림에 따라 다음달에 있을 공산당 대회에서 ‘시황제’ 반열에 오르려는 시 주석의 야망도 희석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 올해 목표치 5.5% 달성이 멀어지면서 급부상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 우려와 함께 양대 장애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넷째,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심한 대발산이 나타남에 따라 신흥국들이 부도에 몰리는 ‘디폴트 라인’을 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신흥국 금리 간 대발산으로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3월 Fed의 첫 금리 인상 이후 스리랑카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고 파키스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놓고 있다. 문제는 1990년대와 달리 IMF의 재원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 판단지표로 보면 취약 신흥국 74개국 중 무려 58개국이 디폴트당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다섯째, 원·달러 환율도 ‘캉드쉬 라인’ 붕괴 초읽기에 몰리고 있다. 캉드쉬 라인이란 1997년 여름 휴가철 후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서든 스톱’이 발생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자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던 당시 강경식 경제팀이 손을 들어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사건에서 비롯된 용어다.

궁금한 것은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캉드쉬 라인마저 뚫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또다시 환투기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인가 여부다. 다행히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외화 사정이 악화되지 않았지만, 무역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달러표시 외환보유액이 갑자기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원·달러 환율 급등을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는 외환당국의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다. 시급히 무역적자 개선, 불법자금 해외 거래 근절, 금융사의 해외 투자 현황과 유력 인사들의 해외 은닉 재산 조사 등의 조치를 마련해 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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