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또 하나의 시각

입력 2022-09-18 18:54   수정 2022-09-18 18:55

지금 한국 경제는 5~6%에 이르는 높은 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은 간신히 2%대를 유지할 정도로 침체를 보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접어들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오랫동안 혹자 상태던 무역수지가 이미 적자 전환됐고, 경상수지마저 적자 전환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한국 경제가 왜 이렇게 부진에 빠졌는가를 살펴보자. 일차적 책임은 급격한 국제 경제환경 악화에 있다.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보호무역주의 대두에 더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한국의 서플라이체인은 글로벌 레벨에서 지역 레벨로 축소됐다. 따라서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부품·소재를 종전보다 비싼 가격에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상황을 한층 악화시킨 것은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 및 식량 가격 급등이 겹쳐 무역 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물가 급등을 초래했다. 국제 통상환경이 세계 경제를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몰아가는 흐름이 그대로 한국 경제에 밀려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및 식량의 해외의존도가 특히 높은 한국 경제의 부존 조건상 무역수지 적자가 가속화되고, 그동안 흑자를 누리던 대중 무역마저 적자로 돌아선 상태다.

한국 경제로서는 어떠한 대처가 필요할까?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 문제는 해외 변수로 인한 것이므로 대처도 기본적으로 국제적 흐름에 맞춰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 확대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적자 확대 극복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무역적자 확대를 극복하려면 한국 수출품의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수출경쟁력 강화의 보편적 접근법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수출품의 질을 개선해나가는 것이지만, 여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해나가되, 당장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 제품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인 일본 제품의 경쟁력 구조와 대비해 어떤 취약점이 있는지 점검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이 필요한 근거는 바로 1997년 한국 경제가 겪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다. 엔화 가치가 1995년 1달러당 79엔에서 1997년 120엔대로 급속히 평가절하될 때 한국의 정책 당국은 1달러 800원대를 그대로 유지해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급증했다. 1996년 무역수지 적자가 240억달러까지 악화한 데 이어 급기야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야 했었다.

일본이 2013년 아베 정권 출범과 더불어 ‘아베노믹스’ 정책을 추진하고 대규모 통화량 발행을 통해 2015년에는 엔화 가치가 급락했는데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원화 가치를 그대로 방치해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크게 고평가됐다. 당시 수출에 어려움을 겪은 한국 기업들은 근로자들을 대거 퇴출시키는 등의 대응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했었다.

원화 가치 대비 엔화 가치 변화가 한국 기업 수출 활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에도 미국이 인플레이션 극복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해외에 있던 달러들이 미국으로 몰려와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세계 각국 통화들이 급속하게 평가 절하되고 있다. 원화와 엔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원화에 비해 엔화 하락폭이 더 클 뿐 아니라 일본의 이자율은 제로 상태인데 비해 한국은 기준금리 연 2.5%로 한국 이자율이 월등히 높다. 요컨대 엔화가 원화보다 더 평가절하되는 데다, 한국 이자율이 일본에 비해 크게 높아 일본 상품 가격경쟁력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아지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의 물가상승률 수준은 2%대인데 비해 한국은 5%대라 여러모로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불리해진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를 축소시키는 방법으로는 수입의 적절한 조정이 있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수입액 급증에는 석유·석탄,·LNG 등 에너지 가격 급등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수입 규모를 축소하려면 에너지 가격을 적절한 수준 인상해 가계나 기업들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도 요구된다. 물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부작용을 막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정책에서 에너지 절약형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등 에너지 수입 수요를 획기적으로 축소해가도록 해야 한다.

대중무역 적자 억제도 중요한데, 일본의 대한 통상정책도 참고가 될 수 있다. 휴대폰, 자동차 등은 한국 제품이 세계 시장에선 높은 점유율을 보이지만 일본 시장에는 침투를 못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불가피한 것 외에는 수입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대한 무역수지 흑자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불가피하진 않더라도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유리하면 수입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기술력 향상에 맞춰 특정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부품·소재를 자국에서 생산 가능한 것이면 해외 수출에 지장 없는 한 자국산 제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하면 앞으로 대중 무역적자는 구조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의 기술력 및 경영기법, 동남아 저임금 노동력과의 제휴를 강화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대체하려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지난번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그들의 무역정책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대비책으로서 동남아 기업들과의 제휴를 확대·강화해 대중 무역적자 축소와 함께 한국 무역의 자율성을 높여나가는 통상전략을 구사해야 할 시점이다.

이처럼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선 수출 증대를 통한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흑자구조 정착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에너지나 식량 등 물가를 높이는 수입품들 수입에 있어서 대량 구매, 수입 유통채널 합리화를 통해 물가를 최대한 안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결과적으로 경기침체 극복의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된다.

물가 인상 극복의 방법으로 이자율 인상도 요구되지만, 한국 경제의 경우 물가 인상이 소비나 투자 수요 증가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이번 경제난국 극복에 있어 문제의 발생 원인을 명확히 짚어내고, 이를 제거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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