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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가치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미국을 제외한 세계 국가들의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각국은 자국 화폐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강달러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천장 뚫은 달러화 가치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6일 0.02% 오른 109.76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14% 넘게 올랐다. WSJ는 18일(현지시간)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는 달러인덱스가 추산되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최대폭의 연간 상승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며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강세”라고 진단했다.각국 통화 가치는 주저앉았다. 중국 금융당국과 시장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위안화의 ‘포치(破七: 7위안이 깨짐) 라인’은 지난주 무너졌다.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유럽 사정도 비슷하다. 달러와 유로의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1유로=1달러)가 무너지며 20여 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신흥국 통화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올 들어 이집트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18%, 헝가리 포린트화는 20% 폭락했다.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들이 갚아야 할 달러 표시 부채 부담도 더 커졌다. 국제금융협회(IIF)는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신흥국들의 달러 표시 부채가 830억달러(약 115조66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세계은행(WB)도 “세계 경제가 침체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더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강달러 현상의 배경에는 고물가가 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연속해서 밟으면서 달러 가치가 올랐다. Fed의 긴축 강화가 글로벌 자금을 안전자산인 달러에 몰리게 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경기 전망이 암울하다는 점도 강달러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WSJ는 “유럽은 러시아 제재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고, 수십 년에 걸친 중국의 부동산 호황도 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美 기준금리 인상폭에 촉각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리며 자국 화폐 가치 방어에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이달 자이언트스텝을 밟았다. 아르헨티나와 가나는 기준금리를 각각 연 75%, 22%까지 올렸다.Fed가 긴축 속도를 늦추지 않을 전망이어서 달러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Fed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3연속 자이언트스텝을 강행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Fed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연방기금(FF) 금리선물시장에 따르면 이번 FOMC에서 1%포인트 인상 확률은 20%에 육박했다.
신흥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더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강달러가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수입 물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외화 유출이 심각해진 스리랑카는 지난 4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세르비아도 지난주 IMF와 회담을 했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WSJ에 “강달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당분간 고금리 시대가 지속될 것이고 경제 취약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가능성은 낮지만 1985년 ‘플라자합의’처럼 인위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공동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당시 영국과 일본 프랑스 서독(현 독일)은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자국 화폐 가치를 올렸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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