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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고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할 태세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반값 교통비 지원법, 납품단가연동제 도입법, 쌀값 정상화법 등과 함께 ‘22개 민생입법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물가와 환율이 치솟고 미국과 중국간 기술 패권다툼이 첨예한 상황에 과연 노란봉투법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인지 묻고 싶다. 노란봉투법은 폭력·파괴 행위만 없다면 불법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노조나 조합원 개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가압류를 못 하도록 한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노조 활동에 관대한 프랑스에서 1982년 비슷한 법이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위헌 결정을 받아 폐기됐다.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정부·여당과 경영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정의당 등과 손잡고 패스트 트랙으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일 기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지난 14일 민주당 소속인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찾아 법안 철회를 요청한 지 하루만에 민주당과 정의당은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민주당 의원 46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국회에 계류된 6건의 노란봉투법안들을 보면 폭력·파괴 행위를 저질러도 손해배상 소송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폭력·파괴 행위가 노조의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노조 임원이나 조합원, 그 밖 근로자에 대해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대표적이다. 노조원 개인한테는 소송을 걸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송으로 노조 존립이 불가능해지면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소송을 하지 못한다면 헌법에 명시된 재산권 보호가 무력화되게 된다. 재산권이 침해됐을 경우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민법에도 명시돼 있다.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부추겨 국가 경제와 기업에 피해를 준다면 민생법안이 아니라 반(反)민생법안, 민폐법안으로 봐야 한다. ‘노동권 보장’이나 ‘노동약자 보호’ 등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시급히 처리해야할 민생법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경제안보시대의 소중한 자산인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는 물론 노사 모두 공멸의 길을 피하기 힘들어진다.
미국은 자국 산업과 기업 보호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항의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8월 7일 상원 통과, 12일 하원 통과, 16일 조 바이든 대통령 서명 등 최종 처리까지 2주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부럽고, 한국은 부끄러운 이유다.
이건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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