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한은은 ‘물가 안정’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곳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6%대로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오른다면 물가에는 기름을 붓는 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한은 내부에서 전기요금 인상론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관세청이 발표한 9월 1~20일 수출입실적에 따르면 무역수지는 41억5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누적 무역적자는 292억1300만달러에 달한다. 전체 무역적자의 90% 이상이 에너지 수입 증가 때문이라는 게 한은 분석이다.
무역수지 적자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은 17% 넘게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나타난 글로벌 강(强)달러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는 건 무역수지 적자로 수출국인 한국의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전력 소비는 줄어들지 않을 기세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7월 전력 판매량은 4만8533GWh(기가와트시)로, 전년 같은 달보다 5.6% 늘었다.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 전력 판매량은 이 기간 8.4% 늘었고, 상가건물·사무실 등에서 쓰는 일반용은 10.7%나 증가했다.
전기요금을 통제한 탓이 크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는 올랐는데 요금은 그대로여서 수요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지난 1년 사이 국제 유가는 최고 60% 이상 폭등했다. 그 결과 에너지 수입 증가로 무역적자는 더욱 악화하고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일 ‘2022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의 전기요금은 여전히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관련 비용을 온전히 반영한 소매 요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쟁발(發)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대란으로 시름하는 유럽이 겨울철을 앞두고 내놓은 대책은 다름 아닌 ‘에너지 절약’이다. 유럽 각국 정부는 겨울철 실내 온도를 제한하고, 요리와 샤워마저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무역적자와 치솟는 환율로 제2의 국난(國難)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추운 겨울을 각오해야 한다”는 유럽의 해법을 한국도 참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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