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시간이 주 32시간으로 비교적 짧았더라도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근로자가 뇌 질환으로 숨진 경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정상규 수석부장판사)는 숨진 근로자 A씨의 배우자와 자녀가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20년 10월 어지럼증과 구역질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뇌출혈이 발견됐다. 이후 상태가 악화해 일주일 만에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A씨의 가족은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 직전 업무시간이 비교적 길지 않았던 점을 들어 업무와 뇌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관련 고시에 따르면 근로자에게 뇌 질환이 발병한 경우,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업무시간이 52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있고, 60시간을 넘으면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또 발병 직전 일주일 동안 업무시간이 종전 12주의 평균 주당 업무시간보다 30% 증가한 경우에도 뇌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로로 인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이 확인한 A씨의 업무시간은 발병 전 일주일 동안 32시간, 12주 동안 평균 32시간이었다.
재판부는 "컴퓨터 전원 작동 시간 등에 기초해 근무 시간을 산정했지만, 망인의 업무 특성상 고객과의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신을 통해 수시로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제 근로 시간을 정확히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영업 실적에 따라 지점의 수익금과 자신의 성과급이 결정되는 구조로 인한 부담, 2020년 상반기 저조한 실적 등이 스트레스를 가중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 "이는 망인이 입원한 뒤에도 휴대전화로 업무를 지속했던 점에 비춰봐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련 고시에서 정한 업무시간 기준은 업무상 과로를 판단하는 데 고려할 요소일 뿐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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