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치솟는데다 수요마저 위축…환율 상승에도 웃지 못하는 수출기업

입력 2022-09-23 18:16   수정 2022-09-24 02:29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 채산성이 좋아진다는 공식은 깨졌습니다. 오히려 총체적 난국에 빠졌습니다.”

제품 10개 중 6~8개를 해외에 판매하는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23일 이렇게 토로했다.

환율 공식이 옛말이 된 이유는 우선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전 기업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 형태로 수출하는 구조다.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값이 크게 뛰었다. 올해 상반기 원재료비를 작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삼성전자는 24.6%, LG전자는 17.8% 증가했다.

통상 원자재 비용이 늘어나면 제품 가격을 올려 수익성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코로나19 보복 소비 이후 ‘소비절벽’이 나타나는 와중에 가격 인상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업계 얘기다. 가격은 올리지 못한 채 제품이 안 팔리다보니 재고만 쌓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높은 환율 변동성으로 대외경제가 위축되면서 소비 심리가 크게 악화됐다”며 “올 하반기 실적 목표를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나마 반도체업계는 올 상반기에 환율 상승 효과를 봤지만 표정이 밝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매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증가한 요인으로 환율 상승 효과를 꼽았다. SK하이닉스는 “달러 강세로 매출에서 5000억원, 영업이익에서 4000억원 이상의 환차익을 거뒀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중장기적 관점에선 고환율을 ‘호재’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해외에서 구매하는 반도체 원자재 가격이 덩달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생산기지를 글로벌화해 해외 매출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환차익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삼성전자의 전체 생산기지 32곳 중 26곳은 해외에 있다. LG전자도 생산기지 30곳 중 25곳을 해외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해외 생산사업장 비중은 각각 81.3%, 83.8%다. 이들 해외 생산법인에서 거둔 이익은 해당 법인에 쌓아두고 있다가 분기나 연말 결산 때 한국으로 송금한다.

이 밖에 달러 강세로 경쟁국 통화 가치가 동시에 하락한 것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달러 대비 약세는 원화뿐만 아니라 엔화, 유로화, 위안화 등 글로벌 공통 현상이다. 지난 22일 엔·달러 환율은 145엔대를 돌파해 24년 만에 엔화 가치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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