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3년6개월여만에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갑작스런 ‘킹달러’ 시대에 내년 해외 파견이나 유학 등을 앞두고 있는 달러 실수요자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점차 역사적 고점에 근접하고 있는 만큼 달러 실수요자라고 하더라도 다급한 마음에 일시 환전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환율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면서 달러를 소량 분할 매수하고,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전체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김현섭 국민은행 한남PB센터장은 “해외 파견 근무자 등 달러가 반드시 필요한 수요자라면 지금부터 환전을 조금씩 해두는 게 좋다”며 “다만 환율이 급등한 상태에서 필요 자금을 한 번에 환전하긴 부담스럽기 때문에 소량으로 나눠 분할 환전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해외 거주비용으로 1만달러의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면 5~7일 단위로 가격 흐름을 관찰하면서 1000달러 이내로 약 10~15차례에 걸쳐 분할 매수하는 방식이다. 먼저 최소한의 생활 자금만 달러로 환전하고 목돈이 들어가는 시점이 오면 그때 맞춰 매수량을 늘리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정성진 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환율 등락 추이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매수 금액과 기간을 잘게 쪼개는 게 나을 것”이라며 “만약 이 과정에서 유학 중인 자녀 등록금 납부 등 큰 규모의 지출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그때마다 환전량을 늘리는 게 좋다”고 했다.
이미 달러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조금씩 매도해 환차익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제 역사적 고점이 멀지 않은 만큼 달러를 그대로 갖고 있기보다 조금씩 매도해 하락 반전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정 부센터장은 “국내 환율의 정상 범위는 1200~1300원 수준”이라며 “1400원을 넘긴 현 상황의 환율은 매도 이익을 실현하기에 충분한 가격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거주자 외화예금은 882억7000만달러로 한 달 전보다 21억1000만달러 줄었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기업,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등이 국내에 보유 중인 외화예금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급등한 달러 차익 실현에 나선 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환헤지 상품 가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으로 생기는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미래 매매 환율을 현재 수준으로 미리 고정하는 거래 방식을 말한다. 이 같은 환헤지 상품에 투자하면 향후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나스닥, 유럽 유로스톡스, 일본 닛케이 등 주요국 증시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이 있다.
고액 자산가라면 통화 분산 목적으로 달러를 일정 수준 이상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센터장은 “자금 여력이 충분한 자산가에게는 환율이 올라가도 안전 자산인 달러화를 계속 보유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대개 자산의 20~30%는 달러로 가져가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장기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관점에서 안전 자산인 달러를 담으라는 것이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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