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내가 상대방과 한 대화를 녹음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흔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 덕에 직장서 겪는 부당한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비밀 녹음을 하는 일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런 녹음행위가 직장에서 이뤄지는 경우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직장 괴롭힘 증거 확보하려'...부장과의 대화 녹음했다가 고소 당해
한 고등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해 오다가 직원들과 갈등을 빚던 A씨는 2018년경 당시 교사이자 연구부장이던 B와 통화하다 B가 A를 위로해 주기 위해 한 발언을 녹음했다. 이후 2020년 9월 행정실장과 학교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여기서 B와 통화한 내용을 녹취록으로 만들어 증거로 제출했다.이에 B는 자신의 '음성권'',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했고, 향후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정신적 손해배상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의 상식대로 대화 당사자가 비밀 녹음을 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는 형사법적 처벌을 면하는 데 불과하다.
다만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회사 동료와의 대화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는 경우 '음성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음성권은 우리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 중 하나다.
실제로 법원은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고 이를 재생해 녹취서를 작성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피녹음자의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며 "특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고,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민사적으로) 위법하지 않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수원지법 2013나8981 등).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배상 의무를 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사건을 맡은 대구지법은 A씨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2021나316060). 재판부는 "비밀 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이익이 있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져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면…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봤다.
그 근거로 △A씨가 통화 녹음 외에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찾기 어려웠을 것 △녹음한 대화의 길이와 내용이 증명에 필요한 범위이며 그 정도가 특별히 지나치지 않은 점 △녹음내용이나 녹취록을 제3자에게 공개하거나 다른 목적이나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동의 없는 녹음에 "위자료 300만원 지급하라"
반대로 비밀녹음을 했다가 손해배상 책임을 진 사건도 있다.여성가족부 공무원 C씨는 2020년 갑질 혐의 등으로 중징계가 의결돼 직위해제 됐다. C는 이 징계가 직원 비리를 신고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판단하고 국민권익위에 신분보장 조치를 신청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여가부는 신분보장 조치를 해제해 달라며 권익위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이에 공익신고자들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 여가부에 징계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자 여가부 공무원 2명이 재단 이사장 등을 방문해 면담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했고, 녹취록이 C의 징계 관련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됐다.
결국 재단 관계자들은 대한민국과 해당 공무원들을 상대로 음성권 침해, 대외적 신뢰 훼손을 이유로 2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 소송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월 2일 재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녹음이 행정소송 당사자들 간 대화를 내용으로 한 것도 아니고, 여가부 측이 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거나 꼭 필요한 증거였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꼬집고, 대한민국이 원고들에게 각 3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다만 공무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직장에서 비밀 녹음을 한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판결도 있다(95다184).
대법원은 "동료 직원과의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해 이를 토대로 진술서를 작성해 교부하고, 그 진술서가 동료 직원들에 대한 형사고소 사건의 자료로 제출되도록 한 행위는…직원 상호 간 불신을 야기해 직장 내의 화합을 해하는 것으로서 근무기강 확립과 품위유지의무에 위반돼 징계사유"라고 판시한 바 있다.
결국 필수적인 경우가 아닌데도 직장에서 비밀 녹음을 함부로 하게 될 경우 민사소송이나 징계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HR담당자일수록 해당 직원과의 대화 등을 녹음 할 때는 사전에 고지를 하거나 동의를 얻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