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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요동칠 때마다 잠을 설칩니다. 20년간 사업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습니다.”
수도권에서 철강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환율이 뛰면서 원자재 매입가격이 급등하고 인건비, 대출이자 등도 끝도 없이 상승하고 있는데 납품 가격은 오르지 않아 죽을 맛”이라며 이같이 토로했다. 매월 1000만원씩 내던 이자를 요즘 2000만원 가까이 내고 있다는 그는 “직원 월급은 제대로 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들이 말 그대로 존망지추(存亡之秋)의 갈림길에 섰다. 원·달러 환율과 금리가 요동치면서 이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대다수 중소기업이 생존을 걱정하는 지경으로 몰린 것이다.
양말, 스웨터, 내의, 장갑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도 환율 급등으로 손실이 커졌다. 지난달 ㎏당 1500원 하던 인도네시아산 실(원사) 가격이 최근 1800원으로 20% 껑충 뛰었지만 소비자가격에 이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현규 대한니트협동조합연합회장은 “환율·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했다간 곧바로 중국산, 베트남산 제품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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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업체가 많은 인쇄·피혁·제화업계도 발을 구르긴 마찬가지다. 부산의 한 인쇄업체 대표는 “국제 펄프 가격이 지난해 말 대비 60% 이상 급등한 데다 잉크 가격도 올라 공장을 돌려도 남는 게 없다”고 전했다. 경남의 한 가죽제품업체 대표도 “올 들어 피혁값이 30% 넘게 올랐다”며 “추석 명절에 한 번에 2~3개씩 구두를 사가던 소비자들이 이번 명절엔 1개 사기도 주저했다”고 거들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주름이 늘었다. 다우케미컬과 엑슨모빌 등에서 폴리에틸렌을 수입하는 경기도의 한 플라스틱제조업체는 환율 급등 탓에 납품하는 대기업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폴리에틸렌 수입 비용이 최근 20% 이상 뛰었는데 이를 납품 가격에 반영해주지 않자 손실을 감수하고 납품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원재료 가격은 최근 1년간 평균 47.6% 오른 데 비해 납품단가 인상률은 10.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7.0%에서 4.7%로 떨어졌다.
홍성규 대한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부분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원자재를 조달해 가공한 뒤 이를 다시 대기업에 납품하는 ‘샌드위치 구조’”라며 “구조적으로 중소기업이 원자재와 환율 리스크를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북지역에서 의복 염색용 염료를 만드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환율, 금리 상승에 전기·가스요금까지 올라 버틸 재간이 없다”며 “직원 임금을 줄여야 회사 유지가 가능한데 급여를 줄이면 직원들이 회사를 떠날까 두렵다”고 호소했다.
내년이 더 두렵다는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인천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원·부자재를 조달하는 기업이 많은 까닭에 환율과 금리 리스크가 재무제표에서 드러나는 시점은 올 4분기가 될 것”이라며 “악화한 실적은 내년 기업의 신용도와 대출금리에 반영되기 때문에 내년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6.8%는 현재의 경제 위기가 최소 1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안대규/강경주/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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