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하루 원유 생산량을 100만 배럴 이상 줄이는 안을 논의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에 불똥이 튈 전망이다. 진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조짐이 보이면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이 커져 중앙은행의 긴축이 예상보다 강도 높고 길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4일(현지시간)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 거래일보다 0.42% 오른 84.97달러에 거래 중이다. 전날에는 전 거래일 대비 5.2% 급등한 83.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1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4.4%(3.72달러) 오른 88.86달러에 거래됐다.
OPEC+가 오는 5일 정례회의에서 대규모 감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최근 유가가 하락하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OPEC+는 OPEC과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비(非)OPEC 국가가 만든 협의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는 지난 3월 배럴당 123.7달러까지 치솟았다. 그 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퍼지면서 지난달 말 기준 79.49달러까지 떨어졌다.
국제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물가에 직격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한은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강도 높게 인상해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5% 이상 지속된다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 세계 주요 기관은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가 지난 2분기를 고점으로 내년까지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3분기 배럴당 106달러에서 4분기 98달러로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지난 8월 경제전망에 올해 상반기 평균 103달러를 기록했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하반기 99달러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전제로 올해 경제성장률은 2.6%, 물가상승률은 5.2%로 각각 전망했다. 국제유가가 한은이 전제한 배럴당 평균 99달러를 넘어서게 되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급상승으로 가뜩이나 늘어난 무역적자가 더 악화할 수 있다.
OPEC+의 감산이 현실화하면 한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고(高)물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은과 정부는 10월이 물가 정점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오는 12일과 다음 달 24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두 번 연속으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은 1%포인트 초과의 금리 격차를 꺼리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한은도 10월과 11월 회의에서 연속적인 빅스텝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글로벌 통화당국들의 기준금리 변경 폭이 종전보다 확대되고 있다"며 "10월에 이어 11월에도 다시 한번 빅스텝 금리 인상이 추가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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