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왕국이 스페셜티 강자로…커피업계 '브리티시 인베이전'

입력 2022-10-06 17:47   수정 2022-10-07 02:26

영국은 ‘차(茶)의 왕국’이었지 ‘커피의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 도쿄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제임스 호프먼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난 이후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영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바리스타 대회 우승 외에도 2008년을 전후한 런던의 카페 붐은 영국 커피산업의 성장을 가져왔다. 경제위기로 장기 고용이 무너진 긱이코노미 시대에 이르자 사무실을 떠난 사람들이 카페로 향했기 때문이다.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좌석이 많아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카페들이 각광받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그 전부터도 영국의 커피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영국환경식품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영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40년 전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차 소비량은 60% 이상 줄어들었다. 차는 집에서 즐기는 음료라면, 커피는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계했다.

스페셜티 커피로 범위를 좁히면 2008년 호프먼과 아네트 몰베르가 설립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스퀘어마일’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스퀘어마일은 대회에서의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기반으로 한 교육과 납품에 집중했고, 새로운 물결에 함께하는 커피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0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귈름 데이비스는 런던의 커피숍 여덟 곳을 방문하면 자신의 카페 ‘프루프록’에서 커피를 한 잔 무료로 마실 수 있는 ‘디스로열티 카드’를 만들었다. 경쟁보다 화합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업계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이를 기반으로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세계 챔피언을 배출한 런던은 세계 커피업계에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을 일으켰다.

페니 대학의 탄생에서 에스프레소 혁명까지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처음으로 옥스퍼드에 문을 열었고, 곧이어 1652년 런던에도 자리를 잡았다. 정치인과 사업가, 학자들은 커피 한 잔에 취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보험 등의 상품을 거래하기도 했다. 한 잔의 커피 값만 치르면 대학이 되기도 했고 주식 거래장이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산업혁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도, 현대적인 정치 시스템이 자리잡은 것도 모두 카페인에 취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가디언과 스펙테이터, 소더비 등 현대인에게 친숙한 미디어와 경매 시스템의 탄생도 영국 카페의 부산물이나 다름없다.

기록에 따르면 1700년께 영국 전역에는 3000여 개 커피하우스가 영업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의 카페가 자리잡았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도시가 됐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커피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할양받은 열대기후의 실론을 커피의 섬으로 만들었다.

1795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통치권을 넘겨받은 이후 실론의 커피 거래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연 1억파운드를 넘길 정도였다. 당시 실론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커피 생산지로 발돋움했다. 실론에 커피의 광합성을 막는 질병인 녹병이 일지만 않았다면, 영국은 조금 더 일찍 커피 왕국이 될 수 있었다.

런던의 커피 붐은 전쟁이 끝난 1952년 다시 찾아왔다. 피노 리세르바토의 ‘모카바’를 시작으로 시내에는 500개가 넘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줄지어 문을 열었다. ‘소호의 에스프레소 혁명’이라 불리는 이 흐름 속에 300년 전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문을 연 그때처럼 새로운 문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두 명의 이란인이 운영했던 가게라는 뜻의 ‘투 아이스 커피 바(2i’s Coffee Bar)’가 대표적이다. 그곳은 클리프 리처드와 토미 스틸 등이 라이브 연주를 하며 영국 로큰롤의 탄생을 이끄는 공간이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음악가와 시인, 배우, 앞으로의 문화를 이끌 10대들, 서인도 출신의 이민자들이 그곳에서 노래하고 담배를 피우며 런던의 새로운 커피 중흥기를 이끌었다.
런던이 이끄는 커피 제3의 물결

꽃을 피웠던 에스프레소 혁명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경쟁업체를 양산하며 한순간에 저물었다. 이후 1980~1990년대에 이르러 이 자리를 채운 것은 대형 카페 체인이었다. 코스타와 프레타망제, 스타벅스는 런던 곳곳을 빠 르게 점령해 나갔다. 미국과 유럽의 몇 국가들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강조하는 ‘커피 제3의 물결’을 일으킬 때에도 런던 사람들은 똑같은 로고가 그려진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도시를 배회했다. 호프먼이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모든 영광이 호프먼과 스퀘어마일에만 있지는 않았다. 마치 제3의 물결을 예감이라도 하듯, 1978년 코벤트가든에서 개업한 이후 소규모 농장이나 협동조합 등에서 꾸준히 좋은 품질의 생두를 구입해왔던 카페 ‘몬머스’는 영국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월드컵테이스터스 챔피언으로 스퀘어마일 창업에 함께했던 몰베르도 호프먼만큼이나 런던의 스페셜티 커피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999년부터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그는 컵테이터스 대회 우승 외에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의 로스팅을 맡는 등 런던 스페셜티 커피 업계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지구 반대편 고향을 그리는 안티포디안(Antipodean)이 이끄는 호주-뉴질랜드식 카페 문화도 영국의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2005년 소호에 문을 연 카페 ‘플랫화이트’는 말 그대로 런던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탄생한 메뉴인 플랫화이트를 소개하는 공간이 됐다.

2012년 문을 연 ‘오존’ 커피는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안티포디안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다. 세 번째 영국 출신의 세계 챔피언 데일 해리스를 배출한 해즈빈을 인수해 규모를 키운 오존은 식당과 카페의 경계가 모호한 뉴질랜드식 공간으로 런던 커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로즐린’ 역시 호주 출신 바리스타와 아일랜드 출신 바리스타가 함께 각자의 고향을 대표하는 스타일을 조합해 2018년 문을 열었다. 1950년대 에스프레소 혁명의 중심에도 이민자들이 있었듯, 이민자들은 런던 스페셜티 커피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런던=글·사진 조원진 커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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