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09일 15: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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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몸값 4조원에 이르는 국내 토종 구강스캐너 업체인 메디트의 인수전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메디트의 러시아 사업 비중이 상당한데, 주요 인수 후보군에 미국계 사모펀드(PEF)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이들이 끝까지 인수전을 완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OFAC 이슈, 걸림돌 될까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메디트의 최대주주인 유니슨캐피탈은 이달 중하순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인수 후보는 미국계 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GS-칼라일 컨소시엄, 유럽계 PEF CVC캐피탈, SKT 등이다. 매각 실무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맡고 있다. 매각 측은 연내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메디트는 국내 토종 3차원(3D) 치과용 구강 스캐너 기술 기업이다. 대표 제품은 'i500'으로, 지난해엔 신제품 'i700'도 출시했다. 매출의 40% 이상이 미국, 중국 등 해외 수출에서 나온다. 유니슨캐피탈이 인수한 뒤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지난해 매출 1905억원, 영업이익은 1032억원을 달성했다.
문제는 메디트 제품 수출국 중에 미국의 제재 대상국이 일부 포함돼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 등이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수출 비중은 1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재무성 산하 해외자산통제실(OFAC)을 통해 자국 기업이 이들 국가나 국가 소속 개인과의 금전 거래를 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계 PEF인 KKR과 칼라일이 해당된다. KKR이나 칼라일이 메디트를 인수하면 메디트가 영위하는 러시아 사업장에도 자금이 투입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계 운용사인 KKR과 칼라일이 회사를 인수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럽계 운용사인 CVC캐피탈도 이번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CVC캐피탈에 운용 자금을 맡긴 기관투자가(LP)에는 미국계 기관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미국 운용사의 메디트 인수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 등 적성국과 관련된 사업을 별도로 분리해 나머지 사업만 양수도 방식으로 인수하는 방법이 있다. .
실제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KKR은 2017년 LS오토모티브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LS오토모티브가 새롭게 진출한 이란 사업이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협상도 위기에 봉착했다. KKR은 당시 경영권 인수 대신 이란 사업을 제외한 지분 투자로 선회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해외 운용사들이 OFAC 이슈를 놓고 인수를 계속 추진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며 "게다가 메디트의 러시아 사업 비중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 부분을 따로 떼내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경쟁제품 가격인하, 금리 급등도 '관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도 변수다. 메디트의 경쟁사이자 글로벌 치과용 구강스캐너 기업인 쓰리쉐입(3Shape)은 최근 메디트 매각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자사 구강스캐너 제품인 트리오스(Trios) 납품 가격을 기존보다 절반 가까이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메디트 제품 납품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가 제품 단가를 메디트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메디트로서는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 역시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민되는 대목이다.IB업계 관계자는 "3쉐이프의 행보는 인수 후보들은 물론이고 메디트 내부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일인 것으로 안다"며 "시장 경쟁이 계속 치열해지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메디트의 수익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등 시장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점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올해 들어 자금 조달을 위한 인수금융 금리는 7~8%대 수준까지 치솟았다. 사모펀드들의 경우 통상 인수 금액의 절반 수준을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한다. 메디트 인수 가격을 약 4조원으로 잡을 경우 절반인 약 2조원을 인수금융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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