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약간 해소된 정도입니다.”
미국의 ‘수출 통제 1년 유예’ 조치를 받아든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중국 공장에 장비를 못 넣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미국 정부가 명줄을 쥐고 흔드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요 고객사가 몰려 있는 중국 투자를 포기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산업계에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KLA 같은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의 ‘VIP’ 고객이다. SK하이닉스가 지난 6월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기계장비의 취득 원가는 97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기계장비 취득 원가는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사업 등을 합쳐 총 287조원인데, 이 중 대다수는 반도체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은 전체 생산량의 30%대 후반, SK하이닉스 우시 D램 공장은 40~50% 수준을 책임지고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정 개선 작업도 활발하다. 장비 수요가 크기 때문에 미국 장비업체는 수출이 막히면 ‘재앙’ 수준의 타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 통제 때문에 메모리반도체 품귀 현상이라도 벌어지면 칩 가격 상승, 정보기술(IT) 제품 원가 상승, 스마트폰 가격 인상 같은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전 세계 소비자의 비난이 미국 정부에 쏟아질 수 있다.
수출 통제가 효과가 있으려면 반도체 강국인 한국 정부와 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도 있다.
더 큰 걱정은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 압박 수위도 높이고 있다. 미국 주도로 한국 대만 일본을 묶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동맹’ 참여를 거듭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칩4 동맹에 참여하면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인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상무부는 “합법적 권익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누구 편에도 설 수 없는 ‘외줄 타기’ 상황”이라며 “양국 정부에 밉보이지 않도록 대응 전략을 잘 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정지은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