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테레사 공주의 외출…앞으로 수십년은 빈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입력 2022-10-13 17:41   수정 2022-10-14 02:54


인구 200만 명의 오스트리아 빈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시회와 음악회가 열린다. 그중에는 해마다 빈의 인구만큼이나 많은 관람객이 다녀가는 곳이 있다. 수천 점의 역사적 유물과 미술사 명작들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최대 미술사박물관, 국립 빈미술사박물관(KHM)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대가들의 그림 2200여 점이 자리 잡은 이곳은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KHM은 8개 박물관의 연합체다.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인류학박물관, 황실보물박물관, 황실무기박물관, 테세우스 사원, 제국마차박물관, 암브라스성, 국립극장박물관 등이 한데 모여 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경제신문사와 함께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사비나 하그 KHM 관장(60)을 지난 9일 관장실에서 만났다. 박물관을 상징하는 대표 작품들을 서울로 막 떠나보낸 직후였다. 그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다음 100년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KHM의 가장 중요한 수집품들을 서울로 보낸다”며 “많은 관람객이 작품과 사랑에 빠지고 오스트리아를 더 가까운 나라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장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나요.

“하나만 꼽을 수 없어요. 이번 서울 전시에 가는 작품 중에 고르라면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1656)일 겁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 그림은 이번 여행을 끝으로 최소 수십 년간은 빈에만 머물 거예요.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화가 두 살, 다섯 살, 아홉 살 때 등 모두 세 점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걸작이지요.”

▷미술관에 명작이 많은데, 어떤 기준으로 전시 작품을 골랐나요.

“빈미술사박물관에는 연간 200만 명이 찾아옵니다. 하루 4000명씩 다녀가는 셈이지요. 외국인 비중이 70~80%에 이릅니다. 한국 관람객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정말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문화예술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이부터, 문화적으로 성숙한 중년까지 다양했지요. 한국인들이 가진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엄선했습니다.”

▷왕가의 중요한 보물들을 해외 전시에 보내는 건 어려운 결정일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림 한 점, 500년이 넘은 갑옷 하나를 여행 보내려면 수십 명이 긴장한 채 일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박물관의 보물들이 세계인과 더 자주 만나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그렇지 않을까요.”

▷미술사학자로 1990년부터 KHM에서 일했습니다. ‘합스부르크 예술과 호기심의 걸작들’ ‘철의 패션, 갑옷’ 등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기획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제된, 그러니까 ‘죽은 박물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 문화와의 연관성을 찾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고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박물관이 셧다운되고, 연간 방문객 수도 60%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박물관 전체에 740명이 일하는데 그 가운데 120명이 연구원과 학예사 등이죠. 처음에는 모두 당황했지만 그 기간 우린 더 많은 기획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100편의 대작을 선정해 디지털 전시관을 열었죠. 하루 관람객 수보다 많은 5000명의 사람이 매일 온라인 전시장에 접속합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코로나 이후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온라인으로 더 깊이 공부하고, 오프라인에선 더 압도적인 경험을 하길 원할 것 같아요. 미술관과 박물관도 그 시기에 대비해 온라인 교육과 전시에 더 매진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딱딱한 박물관이 아니라 24시간 열려 있는 박물관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테레사 공주’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러 오는 관람객은 당분간 슬퍼하겠습니다.

“특정 전시에 명작을 빌려주거나 해외 전시하는 동안 그 그림을 보러 온 관객은 한숨을 쉬고 갑니다. 하지만 KHM에는 페테르 브뤼헐의 ‘바벨탑’ 등 세계적인 명작이 많습니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지요. 합스부르크 명작들이 세계 여행을 하면서 더 많은 세계인이 오스트리아와 빈에 관심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한국의 관객들도 분명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이미 우리 박물관을 다녀간 사람도, 한 번도 못 와본 사람도 말이죠.”

▷사비나 하그 관장은

1962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태어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 머무르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와 빈에서 영어, 미국, 미술사 등을 공부했다. 1990년부터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일했다. 2009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 17년간 큐레이터로 일하며 ‘합스부르크 예술 및 호기심의 방 걸작전’ 등을 기획했고, 왕실 유물과 고대 유물에서 발굴된 호박과 상아 등을 깊이 연구했다. 해외 전시 경험도 많다. 독일 드레스덴,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물들을 선보였다. 재임 기간 동안 박물관 도록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제작하는 등 새로운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박물관 문턱을 낮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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