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4일 13:5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인류의 문명을 바꾼 3가지 요소 중 하나로 바이러스를 꼽았다. 그는 과거 문명이 발달하고 제국들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원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제국의 군대가 아니라 그들이 가져온 새로운 바이러스였다고 이야기한다.
바이러스는 주로 키우는 가축을 매개로 새로운 변이가 생겨나는데, 가축과 지내며 이미 몸에 항체를 갖춘 제국의 군인들이 신대륙을 침략하자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죽거나 제압되었다. 결국 제국주의 시대가 지속될 수 있었고, 이는 인류의 문명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일찌감치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은 바이러스의 변이와 전파로 인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소리 없는 침략자 코로나19는 과거처럼 제국의 군대를 통해서가 아닌, 전 세계로 연결돼있는 공급망을 타고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세계 각국의 경제, 산업,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충격과 변화를 일으켰다.
헬스케어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헬스케어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병상과 인력 부족, 의료용품 수급 문제 등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어려움은 헬스케어 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코로나19로 바뀐 환경에서 헬스케어 산업 리더들이 디지털화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트렌드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글로벌 KPMG는 미국, 영국, 호주, 중국 등의 헬스케어 산업 리더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응답자의 80%는 기존 의료서비스 제공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79%는 향후 3년 내 의료 서비스 모델이 변화될 것으로 예상했고, 65%는 디지털 기반의 의료 서비스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응답했다. 투자 우선순위에서도 의료 서비스의 디지털화(66%)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접목되면서 의료 서비스 유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이 출시되며 질병 예방 및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 구축되는 것이다.
최근 헬스케어 산업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헬스케어의 주고객으로 고령층이 부상하며 의료 서비스 대상의 변화가 일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위로 2040년에는 국민 3명 중 1명이 고령층에 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재 국내 고령자 10명 중 8명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전체 고령자 55%가 2개 이상의 만성 질환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치료와 관리가 모두 필요한 만성질환에 대한 의료 서비스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 디지털이 불편하고 낯설었던 고령층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Digital literacy)가 높아짐에 따라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먼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의료기관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대형병원과 협업한 연구개발(R&D)을 추진해 제품을 고도화하고, 1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제품 활용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병원은 인력, 공간, 장비의 한계 때문에 성장이 제한돼있는 구조이며,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와 병원이 서로 윈윈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협업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인수합병(M&A)을 통해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거나 판매채널을 다변화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M&A를 통해 다른 질환으로의 확대뿐만 아니라 원격 의료·처방·건강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로의 연계를 통한 수익 확대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니어타운의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시니어타운이 과거 일본과 유사한 패턴으로 향후 5년 내에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실제로 대기업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시니어타운과 병원을 연계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차세대 기술을 활용해 시니어타운을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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