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셀러’라고 하면 흔히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같은 고가 명품을 노숙해 가면서 사들여 국내 리셀(되팔기) 플랫폼에서 웃돈 받고 되파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요즘 리셀서들은 이보다 더 고도화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한국에서 원화로 구입한 나이키 한정판을 글로벌 리셀 플랫폼에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달러로 팔아 프리미엄과 환차익을 동시에 거두는 식이다. 이런 거래를 주도하는 리셀족은 대개 10~20대들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커진 리셀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젊은이들은 요즘 원·달러 환율이 1420원대로 치솟자 환차익까지 쓸어 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국내에서 발매된 한정판 상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원화로 사 해당국 통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요즘 같이 원화가 싸질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한 리셀러는 “상품이 판매된 뒤 정산은 10일 뒤에 받는다”며 “하루가 멀다고 환율이 오르기 때문에 판매가 완료되고 정산이 마무리 되는 사이에도 차익이 커진다”고 말했다.
스탁엑스가 2020년 국내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짝퉁 판별이 쉽지 않고, 배송 등에 드는 비용 많아 이런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플랫폼이 들어온 뒤에는 정·가품의 판별과 배송 등의 문제가 모두 해결돼 초보들도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리셀 플랫폼 관계자는 “물건을 고르는 감각만 있으면 사무실에서 클릭 몇 번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가 올들어 급전직하하면서 일본 제품을 싸게 들여와 국내에서 거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어를 전공한 박모 씨(34)는 최근 ‘재팬옥션’에서 희귀 피규어 제품을 구매했다. 박 씨는 “10만원대에 낙찰받아 엔화로 결제하면, 한국 시장에서 20만~30만원대에 팔 수 있다”며 “아직 대형 유통업체들이 뛰어들지 않아 가능한 거래방식”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요즘 리셀 거래로 한 달에 5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10% 정도다. 그는 같은 상품이더라도 국가별로 가격, 판매 수량 등이 다른 점을 이용해 차익거래를 한다.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은 나이키의 ‘덩크로우(범고래)’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많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박 씨는 국내 리셀 플랫폼 크림과 솔드아웃 등에서 신발을 200켤레 이상 대량으로 사들여 미국 소비자에게 마진을 붙여 판다.
박 씨는 “계절적 비수기에 대량 구매한 뒤 성수기에 되팔고, 가격이 많이 내려간 상품을 사들였다 기다려 웃돈 붙여 재판매하기도 한다”며 “투자금 회수 기간이 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비해 회전이 빠른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리셀러들은 나이키 운동화나 명품 뿐 아니라 의류, 레고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박 씨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나 레고를 매입한다.
다만, 글로벌 금리 인상의 여파로 경기둔화가 본격화하면 리셀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면서 ‘거품’이 빠질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 요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리셀은 이제 막 시작된 시장이기 때문에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경기침체가 가시화하면 상황이 급반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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