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산 많은 국민이 고통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직설 화법으로 부동산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래 시장 전망은 언급을 삼가는 게 ‘중앙은행원의 미덕’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대목으로 읽힌다. 빠른 금리 인상이 매매와 전세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매가격이 전셋값에 근접하는 ‘깡통전세’ 우려가 불거지면서 전세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전세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세 끼고’ 집을 사는 소위 갭투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래저래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주택 임차인이 신고하는 ‘확정일자’ 부여 현황은 월세의 경우 올 1~9월 기준으로 107만3412건에 달했다. 지난달 신고 건수(11만1655건) 통계가 합쳐지면서 처음으로 100만 건을 넘어섰다. 4분기 통계가 합산되기도 전에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이다. 또 월세 거래는 올해 처음으로 전세를 넘어섰다. 전세 신고 건수는 같은 기간 101만1172건이었다. 월세가 전세보다 6.1% 많은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8월 주택 통계’에서 월세 거래량은 11만9794건으로 7월보다 12.9%, 전년 동월보다 26.3% 증가했다. 전세 거래량(10만7796건)은 전년 동월 대비 7.5% 줄었다.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51.6%로 전년 동기(42.6%) 대비 9%포인트 높아졌다.
한국만의 고유한 임대차 계약방식인 전세가 크게 위축되면서 월세가 주거 트렌드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 4%가 넘는 고금리 전세 대출을 받느니 월세를 감당하는 게 더 낫다는 주택 임대차 수요층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전세는 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나 비교적 낮은 전세자금대출 금리 등 임대·임차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오랜 기간 한국 고유의 임대차 제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전세는 거래 빙하기를 맞은 부동산시장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집값 하락기에 세를 끼고 집을 사려는 투자 수요가 자취를 감췄을 뿐 아니라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하고 세 들어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1년치 월세 정도로 확 낮추는 대신 세입자의 신용도와 월세 지급 능력에 따라 등급을 차등화한 미국·호주식 월세제도가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거비 절감 같은 전세의 장점이 퇴색하고 있다”며 “부모 등으로부터 전세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는 임대차 시장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또 주택 경기 하반기에도 전세 보증금은 고정되므로 매매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 다만 금리 상승기에 무리해서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기 자본이 적다면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80%를 넘으면 ‘깡통전세’ 우려가 있는 만큼 확실한 보증금 보호 장치를 두는 게 필요하다. 서울보증보험(SGI)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에 반드시 가입해 내 보증금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월세를 희망한다면 최근 청약시장에서 유행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고민해 볼 만하다. 공공지원 민간임대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의 저렴한 가격과 민간 건설회사의 상품 경쟁력 등을 합친 상품이다. 일반 임대료는 시세 대비 95% 수준(일반공급 청약자 기준)이다. 임차료 상승률은 연 5% 이내로 제한된다. 최대 8~10년까지 장기 거주가 가능하다. 임대보증금은 개인이 아니라 사업 시행자가 도맡아 관리하는 만큼 비교적 안전하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취득세와 보유세 부담이 없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월세로 살면서 보유 중인 청약통장을 이용해 청약에 도전해보는 식으로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내집 마련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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