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에서 램리서치는 '식각의 제왕'으로 불린다. 반도체 주요 공정 중 식각, 증착, 세정 장비 시장에 진출한 램리서치는 특히 식각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식각은 웨이퍼에 액체나 기체 부식액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램리서치의 글로벌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삼성전자, TSMC 등을 고객사로 보유한 램리서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팀 아처 램리서치 최고경영자(CE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식각 초격차'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식각 및 반도체 소자 패터닝과 관련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업계에서 가장 앞선 솔루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램리서치의 '식각 초격차'는 TSMC를 따라잡기 위한 삼성전자 파운드리 전략에서도 필수 요소다. 램리서치가 삼성전자의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신공정에 활용할 식각 장비 신제품을 개발하면서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계획으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하지만 TSMC의 점유율이 워낙 압도적이고 수율도 안정적인 탓에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그간 파운드리에서 한 번도 도입된 적 없는 GAA 신공정을 채택해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에 성공했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3나노는 반도체 공정 중 가장 앞선 기술이다. GAA 신공정은 미세화에 따른 트랜지스터 성능 저하를 줄이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여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진보된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로 꼽힌다.
램리서치는 올 1분기 GAA 신공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반도체 식각 장비 플랫폼인 아고스(Agos), 프리보스(Prevos), 셀리스(Selis)를 발표했다.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면 회로를 그릴 때 불필요한 부분을 매우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램리서치는 0.1나노미터(㎚)인 '옹스트롬' 수준의 정밀 식각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팀 아처 CEO는 '식각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과학'과 '수학' 능력을 갖춘 인재 수급을 거론했다. 그는 "반도체 인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및 수학(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인재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반도체 장비 생태계가 취약한 한국과의 접점 확대도 그의 관심사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북미지역 투자신고식 및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가운데 팀 아처 CEO도 직접 참석해 한국 투자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램리서치는 지난 4월 경기도 용인 지곡산업단지에서 반도체 최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인 '램리서치 코리아테크놀로지센터(KTC)'를 개관했다. KTC는 램리서치의 글로벌 R&D 네트워크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된다. 센터에는 최첨단 클린룸이 들어서며 박사급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 100여명이 근무한다.
램리서치는 KTC를 미국 R&D 시설보다 더 진보한 차세대 기술 개발의 전진 기지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팀 아처 CEO는 "KTC는 고객사와의 근접성을 통해 긴밀한 협업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 장비와 공정을 위해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프리몬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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