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등 장기자금 시장도 덩달아 어려워지고 있다. SK렌터카는 300억원 규모의 1년6개월 만기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지난 13일 시행했지만, 대규모 미달이 나면서 희망금리 최상단인 연 6.11%를 주고서야 간신히 자금을 마련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신용스프레드(신용채권 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는 14일 1.14%포인트(신용 AA-급 기준)까지 벌어지면서 2009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기업들의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내 상장사 중 재무제표가 공시된 750개 기업의 총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806조6000억원으로 1년 전(700조7000억원)보다 15.1% 늘었다. 특히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부채는 391조2000억원에서 469조8000억원으로 20.1%(78조6000억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이 막힌 건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2~3년 만기 PF채권을 담보로 건설회사 또는 증권사의 보증을 붙여 ABCP 또는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를 수 개월 단위로 발행해왔다. 이자 차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돌려막기가 막혔다. 레고랜드 사태 후 유동화 채권 금리가 치솟고 차환이 불발되는 사례가 나오면서다. 차환이 안 되면 증권사들은 자신이 보증한 채권을 떠안아야 한다.
전날 발행된 서울 흑석9구역 재개발 PF대출 ABSTB 차환 금리는 한 달 전 연 3.34%에서 연 7%로 두 배 넘게 뛰었다. 현대건설의 연대보증이 붙어 있는 A1신용등급의 채권인데도 이자 급등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달 연 5~6%대 금리로 발행했던 이베스트투자증권 보증 에스지씨이테크건설의 경기 평택시 물류창고 PF 유동화증권 차환 금리는 이달 17일 연 12.2%까지 치솟았다. 금리를 올려도 발행이 안 되는 경우 통상 약 3개월 만기로 돌리던 유동화증권을 최근엔 10일, 2주 만기로 발행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엔 전북 완주군이 보증한 PF ABCP의 만기가 도래했는데, 투자자들이 차환을 거부하고 자금을 회수해 한국투자증권이 그대로 떠안았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다음주 연장시기가 다가오는 8250억원 규모 둔촌주공 PF를 포함해 연말까지 34조원의 유동화증권 만기가 돌아온다. 만기가 점점 짧아져 하루 차환 규모는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들은 매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투자 기관을 찾아가 읍소하는 실정이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PF 유동화증권을 차환 발행하느라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며 “다음주 초대형 차환물을 포함해 만기 채권이 줄줄이 돌아오기 때문에 이러다가 흑자 도산하는 곳이 나올지 모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다고 지적했다. 이세찬 나이스신용평가 SF평가본부장은 “아직까진 증권사의 유동성으로 차환발행 물량이 어렵게 소화되고 있지만 다음달에 물량이 집중돼 있어 위험하다”며 “정책당국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일/장현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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