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44일 만에 몰락한 이유는 경제정책 실패 때문이다. 트러스 총리가 야심 차게 내놓은 대규모 감세안은 한 달 동안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트린 ‘뇌관’이 됐다. 뒤늦게 감세안 대부분을 철회했지만 이미 깨진 시장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고, 트러스 총리도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트러스 총리가 지난달 23일 공개한 미니예산의 핵심은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 감세안이었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45%→40%) 및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20→19%), 법인세율 인상 계획(19→25%) 철회, 주택 구매 시 내는 인지세 인하 등이 골자였다. 50년 만에 최대 감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곧바로 “시장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감세정책으로 영국 재정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일었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정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상충되는 정책을 추진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시장 우려를 불식하기는커녕 오히려 쿼지 콰텡 당시 재무장관은 더 적극적으로 감세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영국 금융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지난달 26일 한때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사상 최저인 1.03달러로 추락했다. 영국 국채 가격도 폭락(국채 금리 급등)하며 국채에 레버리지 투자를 한 영국 연기금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및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까지 영국의 대규모 감세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BOE는 지난달 28일 2주일 동안 한시적으로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긴급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에선 문제의 근원은 트러스 내각의 감세 정책이라며 거세게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이달 3일 ‘부자 감세’ 논란을 빚은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을 철회하는 1차 유턴을 택했다. 이어 14일엔 법인세율 동결 계획을 포기하고 세율을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하며 2차 유턴하는 동시에 감세안의 설계자인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했다. 트러스 총리가 콰텡 장관의 후임으로 택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장관은 17일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까지 거둬들이며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 대부분을 백지화했다.
온갖 논란에도 트러스 총리는 자리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사임 발표 전날에도 “나는 싸우는 사람이지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보수당의 다수 의견이 총리 사퇴로 기울고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사임하면서 내각 자체가 흔들리자 트러스 총리도 굴복했다.
트러스의 사임 발표 직후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1%포인트가량 하락했고, 파운드화 가치는 0.5% 오른 1.12달러대를 기록했다.
영국 보수당은 다음주 새 당대표를 선출할 예정이다. 새 당대표는 총리직을 자동 승계한다. 후임으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 벤 월리스 국방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물망에 오른다. 헌트 재무장관은 당대표 도전을 고사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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