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글로벌 긴축 여파와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자금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얽힌 건설사와 증권사 부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신용경색이 실물 위기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것도 외환위기 때를 연상케 한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줄고 무역수지 적자를 거듭하는 것도 환란 이후 처음이다. 증권시장안정펀드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당시 사용한 대책도 25년이 지나 그대로 소환되고 있다. 무엇보다 위기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정쟁에만 몰두하는 여야의 극한 대치야말로 외환위기 직전과 똑 닮은 대목이다. 정부도 외환위기 전처럼 “위기 가능성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외환위기 때처럼 제 역할을 못하면 당면한 위기의 끝을 낙관하기 어렵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조치로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다. 채권안정펀드를 대규모로 확충해 즉각 재가동하는 한편 한 금융사의 PF 대출 부실이 다른 금융권으로 퍼져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 단계별로 시행해야 한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여의치 않다면 한국은행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담보로 달러화 자금을 조달하는 등 안전장치 대안도 필요하다.
관건은 한국을 아시아 다른 나라와 차별하기 위한 경제 체질 개선이다. 노동·연금·교육 등 3대 핵심 개혁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법인세 인하, 반도체 지원법 등 기업 활력을 높이는 대책도 서둘러 입법화해야 한다. 외환위기 직전 추진했던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의 실패가 환란을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도화선이 됐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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