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이 패닉으로 치닫는 가운데 경제수장들이 모여 꽤나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CP·PF 시장이 발작 중이고, 신용 최상위인 공사채·회사채마저 소화가 힘든 상황에서 오늘부터 회사채·CP를 매입하기로 한 것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조치가 될 것이다. “기존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다하겠다”며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시장 안정 의지를 강조한 것도 적절했다.
모처럼 나온 과감한 대책을 환영하지만 자금시장 경색이 이미 두 달 전부터 감지됐다는 점에서 한발 늦었다는 지적은 불가피하다. 초우량채인 산업금융채권의 금리가 연초 연 1%에서 9월에 연 4%를 돌파한 상황이다. 디폴트 위험이 없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자금시장 대접이 이 정도이니 여타 금융회사나 일반기업의 어려움은 필설로 하기 힘들 것이다.
상황이 이리 악화할 때까지 정부는 ‘면밀한 모니터링’ ‘필요한 시장대응 강화’와 같은 원칙론과 느슨한 메시지만 반복해 왔다.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개최도 지난달 22일 이후 한 달 만이다. 국책·시중은행, 한전 같은 신용 최상위 기업들이 위험 대비 차원에서 고금리로 자금을 싹쓸이하며 시장 혼란을 가중하는 행태를 방치했다. 그러는 새 회사채-국채 스프레드(금리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벌어지며 패닉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말았다.
금융시장은 신뢰를 먹고 산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뒷북’평가를 받으면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이상 징후도 점점 커지고 있다. 더 실기하다가는 감당 못할 후폭풍을 맞을 개연성이 높다. 물론 당국이 앞장서서 공포를 조장하고 호들갑 떠는 것은 금물이다. 영국의 실패에서 보듯 물가가 최우선 목표로 부상한 상황에서 과잉 돈 풀기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한 지원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관련뉴스